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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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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Sep 13. 2023

교사일기

7.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잔소리들)

카페인에 약한 나는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새도록 가슴이 쿵덕 거린다. 커피 맛을 20대 후반에 알게 되니 카페인에 쉽게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어제는 두통이 심해 오후에 커피를 마셨다. 역시나 12시가 되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눈을 감고 누워있자니 잡생각이 맥락 없이 떠오른다. 낮동안 스트레스가 되었던 어떤 장면들이겠지. 눈을 감고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더 잠이 안 온다. 학교의 일들을 생각했다.

‘아이들은 왜 수업 시간에 허락 없이 일어나지?’

‘아이들은 왜 수업 중인 교실에 늦게 오면서 앞문으로 들어올까?’

‘주의 사항들을 써서 교실 앞뒤문에 붙일까?’

‘졸업앨범 촬영 모둠에 못 들어간 아이들은

어쩌지?‘

‘체험학습 조를 짜야할 텐데 소외되는 아이들이 있으면 어쩌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녔다. 그리고는 그래 일장 연설을 아침 조회시간에 해야겠다 다짐하고 내적 언어로 연설을 시작했다.

‘자율을 누리고 싶으면 책임도 따른다. 학급행사에서 친한 친구와 모둠을 하고 싶다면 어느 모둠도 선택을 못한 친구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책임이 될 수 있다.’

‘교실은 사회성을 배우는 곳이다. 불편하더라도 함께 했을 때 배우는 것이 있다’

‘예의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존중이다’

‘읭? 이건 맥락에 안 맞는 얘기인데..’

이런저런 얘기를 해볼까 하면서 새벽 몇시쯔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밤의 일장 연설을 생각해 보니 아주 꼰대스럽다. 아침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담임하고 담쌓고 싶을 것 같다. 이런 게 잔소리지 싶어 밤새 준비했던 연설문은 지웠다. 그래도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짧고 살짝 가볍게 이야기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끔이긴 하지만 좀 더 진지하게 우리가 교실 안에 모여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치와 이치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런데 밤 감성에 미리 말해보는 나의 훈화는 이성을 되찾은 아침에 되뇌면 이건 아니다 싶다. 좀 더 경쾌하게 수려한 말솜씨로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지만 나의 훈화는 무겁고 진지하다. 그냥 꼰대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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