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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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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Sep 16. 2023

교사일기

8. 연가 쓰던 날

교사에게도 연가가 있다. 경력순으로 연가 가능일 수가 올라가다가 21일에서 멈춘다. 나의 연가 가능일 수는 21일이다. 그중 9월이 된 지금 사용연가일 수는 1.4일이다. 시험기간에 조퇴를 했던 것이 합산되어 1.4라는 숫자를 만들었다. 9월인데 어디에 쓰려고 연가를 이리 모아두었을까 하는 의문은 우리에겐 맞지 않다. 연가 보상금이 없다. 즉 모아두어도 다음 해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게 연가이다. 학교에서 수업일 중에는 연가 사용을 지양 할 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표를 바꾸고, 여러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아이들에게 안내하는 것이 참 번거롭고 마음불편하다.


그런데 어제 연가를 썼다. 둘째 아이가 밤 9시쯤 “엄마 머리뼈가 아파!”라고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외쳤다. 앗 지난번엔 “엄마 귀에서 누가 자꾸 말을 따라 해” 하고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외쳐서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이었다. 이번에도 아프다는 표현이구나 싶어 열을 쟤보니 39도였다. 둘째 아이는 아파도 티가 잘 안 난다. 잘 놀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표현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갑자기’ 아프게 되는 아이이다.


밤에 아프기 시작하면 한 시간쯤 걸리는 친정에 데려다 주기 어렵고 병원도 데려가야 하니 난감하다. 학교 수업 시간표 어플을 켜고 시간표 조정을 해본다. 일단 학교에 데려가서 1,2,3교시를 몰아서 하고 조퇴를 하고 나올까? 아니다. 시간표를 조정하고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여러 개의 반이 수업시간이 바뀌고 여러 선생님께 부탁드리는 것 말고도 누군가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민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이 늦은 시간 귀가하여 누가 연가를 쓰는 것이 나은지 상의한다. 내가 연가를 쓰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선생님들께 여러 부탁 연락을 드리고 둘째 아이를 간호하며 한나절을 보냈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받았을 시간 오후 4시 즈음, 내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문자와 전화로 몇몇 아이들이 내 안부를 물었다.


띠롱

‘보고 싶습니다 ‘

’읭? 얘들이 부담임샘한테 혼났나? ’

띠롱

‘오늘도 무사히 수업을 잘 마쳤습니다.‘

 ‘읭? 누가 시킨 거 아니야?’

띠롱

‘선생님 오늘 제가 가장 열심히 했어요. 이제 졸업할 때까지 안 혼나는 거 약속할게요.’

‘……’

연락의 내용들을 자세히 보니

첫 번째 메시지를 보낸 녀석은 누가 시킨다고 할 애가 아니고 두 번째 메시지는 내가 걱정할까 봐 오늘 학교상황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세 번째 메시지는.. 오늘 나의 빈자리를 역력히 느꼈을 우리 반 s의 순수한 다짐이었다.


사실 학교에서 담임이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조회, 종례시간에 점심시간 임장을 모두 합쳐도 한 시간 남짓이다. 매일 한 시간씩 만나는 나와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이제는 우리가 짝꿍처럼 무슨 일이 있는지, 상황은 나아졌는지 서로 챙겨야 하는 사이가 된 것 같아  그 메시지들이 따뜻했고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교사들이 연가를 쓰기 어려워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전체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고 내 업무를 어렵게 부탁해야 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그중에 최고는 나를 믿고 따르는 요 녀석들이었다.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아이들은 순수하고 고맙게도 자신의 옆자리에 기꺼이 나를 끼워준다. 그래서 나도 더 선생다워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아이들 덕분에 힘들었던 일상에서도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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