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던 곳은 고등학교였다.
시험을 치르는 몇 년 동안 시험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수험생이 하루아침에 교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시절 불가능을 가능케 해 줬던 선배님을 오늘 오랜만에 만났다.
선배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8년 학생부장으로 일하시며 4명의 계원 중 3명을 신규교사로 받으셨던 아주 용감하시며 운이 없으신… 젊은 보직교사 셨다. 선배님은 3명의 신규교사에게 담임선생님처럼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세심하게 알려주셨다.(아마 아주 귀찮고 번거로웠을 거라 예상한다.)
한 번은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시간에 감독교사의 멘트와 시간대별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기도 했고,
한 번은 국, 영, 수가 아닌 내 전공과목의 학교 안 위치에 대해 실감하며 속상해할 때, 우리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어떤 과목의 선생님이어서가 아니라며 다독여 주셨다.
한 번은 신규교사 모두의 도장에 이름을 새겨 선물하시기도 했었다.
또 한 번은, 부당한 지시에 대신 결재판을 들고 전면에 서주셨었다.
교직인생 동안 늘 가슴속에 간직한 2008년은 선배님 덕분에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선배님께 나는 호기롭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었고, (당시 40대..)그 이후로는 주례 선생님의 인연이 더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님 부부는
아아….(감탄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어떤 글이든 부족함이 느껴질 것 같다.)
어쩌면 2008년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으셨다.
함께 간 우리 아이들을 보시고 집안 구경을 시켜주시며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 도와주셨고,
교감선생님으로 계시는 학교에 신입생 모두의 이름을 손수 새긴 도장을 선물하신다 하셨고, (6년 동안)
공모 교장선생님으로 발령받으시면서도 사업을 많이 해야 하는 거냐고 고정관념에서는 벗어난 질문을 오히려 내게 하셨다.
여전히 다정하고 배려있게 모든 사람을 존중하셨고, 성의와 정성을 많은 사람에게 베푸시면서도 고정관념에 함몰되지 않도록 고민하는 모습이셨다. 감동적이다 못해 자극이 되었다.
남은 교직생활을 그간의 교사로 일하며 받았던 여러 상처에도 불구하고 정성과 성의를 쏟아보고 싶어졌다.
내가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세상을 대하는 순수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을 쏟는 사람만 가질 수 있게 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었고 이런 게 낭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감흥을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