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계에 대한 성찰
내가 지나온 교직생활동안 어느 반이고 교사의 관심이 더 많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 2023년에도 어김없이 관심이 필요한 s가 있다. 동료 교사들은 일당백인 그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다가 다른 친구들에게 관심이 덜 가게 되어 속상해했다. 나는 줄곧 그런 동료교사에게 우리가 그 아이에게 관심을 쏟아 학급 아이들이 원만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다수의 아이들에 대한 간접적 관심 아니냐고 말했었다. 그런 내가 학기말이 되니 지쳤다.
학기 초 s에 대한 소문을 듣고 최선을 다해 관찰했다. 학기 초부터 상가 앞 맞짱, 화장실 앞 어깨빵, 학급 친구와 말다툼 및 신경전 등 사건사고로 상담 횟수가 많아 따로 상담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만에 친밀감이 생겼다. s는 나와의 친밀감을 마음껏 표현했다.
“선생님이 좋아요”를 남발하고,
“선생님 다른친구들이랑 말하면 섭섭해요”라는 말로 나와의 대화를 독점하려고 했고,
“저 부르라고 했죠?”라며 나와 관련된 온갖 심부름을 다하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내게 다가오려다가 멈추고, 말하려다가 가로채였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니 s를 제외한 30명 아이들에게도 내 관심이 가고 있다는 믿음이 흐려졌다. 게다가 학기말, 모든 에너지를 다 뿜어내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 것도 지친 마음에 한몫했다.
사람이 쉽게 변화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사람
백번 물어보면 백번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오늘의 s에게는 그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선생님 s가 자리 바꿨어요.
선생님 s가 시비 걸었어요.
선생님 s랑 못 앉겠어요. 자리 바꿔주세요…. “
학급아이들이 아우성이다. 갈등이 일어난 아이들에게는
“갈등은 양쪽의 입장 차이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규칙을 더 안 지킨 친구는 있지만 그게 갈등의 원인은 아니다. 서로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거리를 두어라. 자리는 샘이 조정해 주겠다 “ 로 의연하게 상담을 진행했다. 자리를 재배치할 때마다 s의 주변 아이들의 반응은 2가지이다.
1. s와 도저히 못 앉겠다고 자리 조정을 요구하거나
2.s와 동조해 신나게 떠든다.
한달에 한번 자리를 바꾸면 s의 자리는 늘 재배치가 필요했다. 갈등이 일어난 s와 아이들을 불러 누구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s가 본인이 옮기겠다 자처했다.
“어디로 자리 옮기는 게 좋겠어?”
“y랑 바꿀래요! “
y는 우리 반 최고의 모범학생이다. 착한 학생 선발 대회에 나가면 일등 할만한, 교실의 화분 관리를 성실하게 해서 새순을 키워낸 사랑스럽디 사랑스러운 아이. 이미 s에게 불만 없이 자리를 바꿔준 이력이 있는 아이이다.
불끈 치솟았다. 착한 것이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뜻이 아님에도 착한 사람이 겪어야 할 손해의 요구에 늘 불만을 갖고 있었다.
“ 왜 y야? y가 착해서? 착하다는 건 손해를 봐도 된다는 뜻이 아니야. 샘은 너의 자리 조정을 위해서 수많은 생각을 하고 해당하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 그런데 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착한 아이를 골라 자리를 바꾸고 싶다고 말하니? 그냥 지금 자리에 앉아서 방학 전 4일 동안 수업 규칙 지키면서 버텨!”
화를 내는 순간, s의 잘못된 점을 훈계하기 위해 아이 앞에 우뚝 선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드러내지 않던 s의 반항심이 고개를 들고 우리의 래포가 흐트러질까 봐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들에게 하는 모든 훈계에는 모험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화를 내고 이틀 동안 s는 나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내게 친절하진 않지만 4일을 버티라는 내 말을 일부 따라주고 있다. 갈등이 생겼던 친구들과도 소란 없이 지내고 있으며 과한 행동은 줄었다.(이틀 사이에 신체폭력으로 다툼이 시작되는 것을 말린 적은 있다.)
가장 다행인 건 나와의 래포도 유지되고 있다.
이로서 s와 한고비를 넘겼다.
“아이들과의 밀당, 바이오 리듬, 복선 이런 것들을 의연하게 넘겨야 하는 사람” 도 나만의 교사 역할에 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