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카뮈 김영화 옮김 [민음사]
책을 잘 고르지 못하는 내게 고전을 선택하는 것은 불패다. 이방인도 다르지 않았다. 첫 부분에서는 좀 더 세밀한 감정 묘사에 목이 마르려고 하다가도 상황 전개에 참신함과 탁월성에 읽는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아니면 살인을 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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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의 어머니를 매장했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논고는 방청객들에게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았다.]107-107p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으로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른 후 그에 대한 재판을 받는 과정의 대화 장면이다. 검사는 살인과는 무관하다고 판단되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임하는 태도에 대한 비난으로 뫼르소의 살인 동기에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변호사는 그 인과관계의 부적절성을 꼬집었고, 방청객도 웃음으로 무언의 동의를 하였다. 그것은 적절한 동의였다. 그러나 검사는 다시 뫼르소는 어머니를 “마음으로 매장”했다며 감정에 호소했고 방청객은 다시 검사의 주장 쪽으로 기울었다. 이 대목에서 “ 마음으로 매장했다는 것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설사 어머니를 “마음으로 매장”했다고 한들 개인의 가족사가 가족과 무관한 다른 누군가의 살인동기가 되었을 수 있을까? 인과관계가 희박하다고 생각했지만 방청객에게 비논리적이고 관습적인 도덕적 잣대를 향한 감정에의 호소는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대목을 읽으며 내가 이방인이 되는 경험을 했다. 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사건의 정황파악이 없이 전개되는 재판 상황이 의아했다. 그리고 관습적인 도덕적 잣대, 즉 어머니 장례식에서 눈물을 보여야 한다는 것, 장례를 치른 후에는 조의에 표현으로 얼마동안은 정숙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 등이 논리적 토론의 과정인 재판에서 주요하게 논의될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태도가 솔직한 사람을 이방인으로 만들고 그야말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꼴이었다. 뫼르소가 솔직했기 때문에 겪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회적 가면과 위선이 사회성에 필요처럼 느껴졌고 도덕과 사회성이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관계의 피해자가 뫼르소였다. 그럼에도 결말에 이르러 행복한 삶은 뫼르소의 것이었다.
“…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36p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맛보았고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며 마지막 순간까지 삶에 대한 의지로 행복감을 느꼈다. 이것은 도덕적인 삶의 승이라고 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깊고 깊은 상념들로 가득 채워가면서도 그 생각이 이제까지는 해보지 못했던 생각들이라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