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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수 Feb 14. 2024

채식주의자

창비 [한강]

나는 다독가가 아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자는 다짐을 하지만 그도 어렵다. 어려운 책을 만나면 난독증인가 싶을 정도로 책을 더디게 읽는다. 그런 내가 하루 만에 그것도 단 4시간 만에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 [채식주의자]였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져 책을 사두고도 미루고 미뤄서 읽었던 책인데,


와…… 정말 한껏 빠져들었다.

그리고, 뒤통수를 ‘댕’하고 맞은 사람처럼 한동안 멍하니 작품을 돼 내었다. 읽은 시간은 4시간뿐인데 감동과 여운이 며칠 동안 계속된다. 여운의 주요 내용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책에 표현된 영혜의 몸을 비디오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마치 직접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책에는 어떠한 이미지도 없는데 나는 책에 표현된 내용들을 머릿속에서 상상했고 영혜의 온몸에 그려졌을 초록빛 바탕과 몽고반점부터 피어난 꽃, 가슴에 그려진 화려한 꽃까지 마치 영상을 본 것처럼 색감까지 연상이 되었다. 이런 걸 인상 적이라고 하는지 읽었는데 본 것 같은 이 느낌이 매우 남달랐다. 그래서 몇 번을 ‘묘하다. 읽었는데 본 것 같아’라고 혼잣말을 했다.


두 번째는 영혜가 꾸었다는 꿈에 대한 여운이었다. 선혈로 넘쳐나는 그 꿈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꿨던 꿈과 흡사해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꿈에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는 것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20년 전쯤의 꿈인데도 색감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내 꿈과 영혜의 꿈이 흡사한 부분이 있었다. 그 당시 공포스러운 일을 겪었었고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꿨던 꿈이라 영혜가 얼마나 억압받고 공포를 느끼며 성장하였는지 알 것만 같았고 회복 없이 자신에게 상처 주는 방법으로 견딘 결과가 정신분열임을 공감했다.


세 번째는 영혜, 남편, 언니, 형부의 정교한 관계도였다. 폭력에 순응하지 않은 영혜와 순응한 언니, 영혜에게 인간적인 관심이 없었던 남편과 관심의 도를 넘어 섰던 형부, 그러면서도 다정하고 생기 있는 언니가 좋았던 남편의 모순과 무미건조하고 절제되어 있던 영혜가 좋았던 형부의 모순까지 읽어 내려간 글을 되뇌며 여러 인물관계를 떠올려봤다. 작가는 어느 만큼 인물들의 관계를 의도하고 작품을 써 내려갔을까? 가늠이 안되어 신비롭고 더 여운이 남았다.


4시간 동안 읽은 책을 4일 동안 감상하고 이제야 그 여운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작품이란 감상의 시간이 더 긴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술작품에 빠져들어 한동안 잡생각을 안 하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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