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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나 Apr 25. 2022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아이

아빠의 영원한 어린 아이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과 아이가 되어가는 부모, 또는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나

대부분의 자식들에게 그러하듯, 아빠는 너무나 단단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릴 적, 새벽 5시에 출근을 하면서도 아빠는 항상 잠든 내 손을 어루만지며 십여분을 있다가 나가곤했다. 잠에서 깬 나는 어리광을 부리기도, 가끔은 모르는 척 눈을 뜨지 않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터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식당에 가면 항상 고기를 구우셨고, 어린 내가 보기에도 드신 것이 없어 보였을 만큼 항상 당신의 식사는 뒷전이었다. 마음에 병이 나 많이 아팠던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집에 계시지 않았을 땐,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고 들어와도 항상 서투른 밥상을 차리고 혹여나 내가 설거지라도 할까 부지런히 뒷정리를 하시곤 했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당신보다 가족이 우선이었고, 넘치진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았던 내 유년기를 위해서 말그대로 당신의 인생을 받친 사람이었다.


진심으로, 아빠가 가족이 아닌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하지만 가끔은 정장을 입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류가방을 든 아버지들을 부러워했다. 결과적으로, 허울뿐인 내 바램들이 나의 행동과 일맥이 상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저 한심한 자의식 과잉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아빠는 요새 우리 남매의 전화를 잘 받지 않으신다. 좋은 대학을 나와 유행하는 옷을 입은 우리 남매의 눈에는 늘 흙이 묻은 옷을 입고, 어깨가 굽고, 시끄러운 현장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탓에 목소리가 커져버린 아빠가 가끔은 한심해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품은 채로 아버지에게 내뱉은 “걱정”이라는 투명한 포장지에 쌓인 날카로운 말들은 수년간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렸나보다.


자식들 모두 유학을 보냈지만 여권조차 없는 우리 아빠는 이제야 동창들과 제주도를 가고, 면세점에서 당신 옷을 쇼핑하곤 한다. 오랜만에 부모님 댁을 가도 더이상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고, 고깃집에서 고기를 굽지 않는다. 아빠도 아빠의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놓고, 이제와서는 왜이렇게 가족들에게 무심해진거냐고 서운해하는걸 보니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긴 글렀고, 나중에 하게 될 후회가 벌써부터 마음에 아리다.


이런 생각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면, 괜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가며 아빠에게 전화를 해보기도 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도넛을 사 집에 내려가곤 한다. 그렇게 이루어낸 짧은 통화와 짧은 만남은 항상 퉁명스러운 말들로 끝이 나고, 또다시 나는 후회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이렇게 앉아 글을 쓴다. 이런 감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라면, 너무 슬퍼서 그냥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항상 나의 어른으로, 나는 항상 아빠의 아이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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