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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퍼시케티,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현대미술과 고전 카툰의 세계로

by 도연호

누구도 이렇게까지 성공한 명작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선을 인도한 영화입니다. 최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소위 핫한 애니메이션이 여러 개가 있는데요. 예를 들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원작으로한 아케인이나, 드림웍스의 <장화 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그렇습니다. 이 애니메이션들은 각본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의 독특한 색감과 연출 방식으로도 화제가 되었었죠. 초현실적인 작화를 만들어내려는 2010년대의 애니메이션계의 트렌드와는 달리 과장되거나 현란한 색감, 카툰을 연상시키는 표현 방식을 차용한 연출방식말입니다. 이러한 현대 애니메이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처음 시도한 완성도 높은 영화가 바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입니다.




뱅크시와 코믹스


그래서 영화의 연출방식이나 스타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책의 한 장 한 장을 넘기듯 만화책의 표지로 시퀀스를 구분하는 연출도 있었구요. 대사를 그래피티마냥 화면에 그대로 그려놓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마일스와 피터B파커, 그웬은 3D에 가깝지만 피터 포커나 페니 파커는 2D에 가깝게 연출하여 다른 세상의 스파이더맨이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음악과 음향도 인상깊은데요. 빌보드에 오른 Sun flower, What's up danger는 말할 것도 없고 코끼리의 울음소리를 가져와 만들었다는 프라울러의 전용 효과음은 공포영화를 연상케 하기도 합니다. 특히 프라울러가 달려들때 보라색 잔상이 남는 연출도 기억에 남네요. 마일스가 기대는 말길이라는 문구를 삼촌 애런과 함께 그래피티로 벽에 그리는 장면은 현란하고 과장된 거리 예술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줍니다. 차원이동장치의 여파로 뒤섞인 다양한 색의 신호등을 본 행인의 대사처럼 영화는 마치 뱅크시의 작품같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현대미술과 고전카툰을 뒤섞은 독특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각종 재치있고 코믹한 대사도 극을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 주었어요.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등장할 때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얘기할게라고 말하는 장면. 마일스가 그웬의 머리를 잡아뜯어 만들어진 원블럭 헤어스타일을 마일스가 마음에 들어하자, 넌 마음에 들어하면 안 되지라고 그웬이 쏘아붙이는 장면이 그랬습니다. 예상을 벗어나는 창의적인 각본도 눈에 띄는데요. 단적인 예로 영화 시작 15분 만에 스파이더맨은 죽습니다.




마일스의 풀린 신발끈


주인공 마일스와 여러 주조연들도 매력있었습니다. 마일스는 전형적인 미국 흑인 경찰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스페인 억양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평범한 학생입니다. 마일스는 새로운 학교에 진학해 친구를 사귀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요. 시험을 일부러 틀리기도 하고요. 아버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마일스에게 아버지는 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라고 차갑게 일갈합니다. 마일스가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되자 1대 스파이더맨은 마일스가 평범하게 살고 싶더라도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장면과 묘하게 겹칩니다. 이후 마일스는 다른 스파이더맨처럼 삼촌 애런을 킹핀에게 잃게 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끔찍한 상황을 맞이합니다. 영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내면과 행동을 영화에 담고 있습니다.


마일스의 신발끈은 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묶인 인물이 가진 자유의지를 상징합니다. 학교에 들어간 마일스는 친구가 신발끈이 풀렸다고 지적하자 그건 내 자유의지로 푼 것이라고 말하죠. 마일스가 높은 건물에서 뛰기를 주저하고 낮은 건물로 옮겨 뛰려고 시도할 때 이 풀어진 신발끈에 걸려 마일스는 넘어지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너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응원을 듣고, 멘토 피터B파커에게 충고를 들으며 성장해 마침내 자유의지로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도시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웹스윙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What's up danger가 흐르고 도시가 상하반전이 되어 마일스가 거꾸로 떠오르는데요. 이 장면은 마일스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진정한 스파이더맨이 되었음을 나타내는 명장면입니다.




스파이더맨, 다른 스파이더맨, 또다른 스파이더맨


피터B파커도 그렇습니다. 피터B파커는 인생이 꺾여 무너진 사회인으로 묘사됩니다. 영화 내내 마일스만큼이나 불안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메리 제인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영향을 미치고 트라우마로 남았음이 꾸준히 묘사되지만 그는 제자 마일스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성장합니다. 그가 마일스 대신 남아 차원이동장치를 파괴하려는 행위는 스파이더맨으로서의 선량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거리낌 없이 포기할 만큼 그가 삶에 대한 의지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마일스에게 사랑한다고 너를 보며 나도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며 인생에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 메리 제인에게 청혼하는 피터의 모습에서 많은 성인들은 오히려 주인공인 마일스보다 더 감정이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상징적인 대사로 마일스가 스파이더맨이 될 준비를 마쳤는지는 언제 아냐고 묻자 알 수 없다면서 단지 믿음의 도약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그는 이 대사를 제자인 마일스에게 마지막에 똑같이 돌려받게 되죠.


킹핀은 마일스와 여러모로 대척점에 서있는데요. 그 대척점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킹핀은 가족을 스스로의 잘못된 판단으로 가족을 잃었음에도 가족의 바람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차원에서 그들을 불러오려 합니다. 마일스는 킹핀에게 가족인 애런을 잃었고, 아버지인 경관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에 킹핀에게 맞섭니다.


그웬은 마일스와 또래의 스파이더맨인데요. 쿨한 성격에 여린 속마음을 지닌 인물입니다. 마일스와 또래의 인물인만큼 서로를 이해해주고, 약간은 서로를 마음에 두고 있는 묘사도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웬을 꼬실 생각에 그웬의 말을 한마디도 귀담아 듣지 않는 마일스와 자신의 이름에 대해 변명하느라고 마일스의 이상한 행동을 싹 다 무시해버리는 그웬이 눈에 띄었는데요. 마일스가 삼촌을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이해해주고, 버스에서 서로 친구가 되기로 수줍게 말하면서 관계가 변화하는 모습에서 약간은 설레기도 했었네요. 뒤에서 피터B파커가 깬 채 대화 내용을 다 듣고 있는 점도 개그 포인트입니다. 이외에 일본 풍의 로봇 스파이더맨 페니 파커, 흑백으로 이루어진 스파이더맨 누아르나 돼지에 물린 거미라는 괴랄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피터 포커도 각각 특유의 개성으로 신스틸러 역할을 해주었어요. 스파이더맨 여섯명의 전투 방식도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를 비교하며 보면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일스는 날쌔고 전투센스가 돋보이는 액션 장면이 돋보이는데요. 그웬은 반대로 곡예나 발레를 보는 듯한 아크로바틱한 움직임. 피터B파커는 정석적인 방식. 누아르는 권투 방식에 타격감이 돋보이는 연출을 사용했습니다.




이스터에그


마지막으로 다중우주의 스파이더맨을 다룬만큼 여러가지 이스터에그가 숨어있습니다. 먼저 1대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은 모두 실사영화에서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도 어김없이 등장하죠. 쿠키영상에서는 서로를 가리키는 스파이더맨의 밈이 재현됩니다. 스파이더맨이 그웬을 구출하는 장면은 스파이더맨 실사영화에서 그웬을 구출하는 장면과 유사합니다.


어쩌면 가장 마이너한 스파이더맨 영화였음에도 작품성은 그동안 나온 스파이더맨 영화 중에서도 돋보이고 개성넘치는. 또 앞으로의 애니메이션 연출 방식을 완전히 바꾼 스타일리시한 영화. 그러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담은 성인용 애니메이션.


밥 퍼시케티, 피터 램지, 로드니 로스먼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였습니다.




평점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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