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지내면 편하고 좋을 줄 알았다. 그런 것도 어쩌면 건강할 때 얘기인 것 같다.
일단 회사와 거리가 가까운 것은 좋았다. 걸어갈 거리는 아니었지만 시내버스 타고 10분 정도만 가면 되는 거리였다. '출근할 때 배가 아프면 어쩌지'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잠깐만 참으면 되니까.
문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해 생각하지도 않았던 외로움이었다. 자취할 때 제일 서러울 때가 아플 때라더니... 아플 때 혼자 있는 걸 선택하니 엄청 서러웠다. 인생이 망가진 것만 같고 세상에서 버려진 느낌이었다. 평소 우울증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살았었는데, 우울증이 찾아왔다. 처음으로 '죽으면 편할까'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하는 일은 오직 티브이보고 담배 피우러 나가고 화장실 가는 뿐이었다.
숙소에서는 혼자 있으니 옷도 속옷만 입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신발도 화장실 들어가기 편한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전부 급하게 똥이 마려울 때 화장실을 빨리 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제는 이런 것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숙소에서 주말을 되었을 때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놀러 오라고 하였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싫었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난다.
아이들 학원이 주말에 특강이 있어서 시간이 맞지 않아 고민을 했었는데,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토요일 저녁때 놀러 왔다. 언젠가부터 외식은 꿈도 못 꾸는 몸상태라서, 근처 백화점 지하 푸드코드에서 구경도 하고 집에서 먹을 음식도 사러 나갔다. 이것저것 음식을 고르고 기다리기를 한 시간째. 벌써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 몸으로는 시간이 지나는 걸 감당하기 힘들다. 이제 금방이라도 배가 아플 것 같아서 초초해지고 마음이 초조해지나 애들한테 자꾸 서두르라고 말하게 된다. 부랴부랴 음식들을 포장하고 숙소로 돌아와 바로 화장실부터 간다. 평소 음식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좋아했었는데 병은 사람을 바꿔놓는다.
숙소에서는 밖에서 포장해 온 저녁을 먹고 잠깐 같이 시간을 보냈다. 자고 가기를 바랐으나 역시 여러모로 불편함이 있어 아내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역까지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데 다시 우울해진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밤에 자기 전에 아내와 통화를 하며 힘들다고 투정을 부려본다.
아내는 원래 강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뭔가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걸 편안해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 괜찮을 거라며 날 위로해 준다. 평소에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며 나보다 훨씬 약하다 생각했던 사람인데 나에게 고비가 오니 갑자기 강해졌다. 나는 평소에 고민거리가 있어도 아내한테 별로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말을 하는 순간 더 걱정할 걸 알기 때문에... 그런데 날 위로해 주는 강인한 목소리가 고맙다. 어떻게 저렇게 달라졌을까. 사실 아내는 위기에 강한 타입이었나 보다.
흔히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을 하곤 한다. 어쩌면 이 세 가지는 정말 사람이 사는데 기본적인 것일 거다. 이중 자고, 싸고 두 가지에 문제가 생겼다. 싸는 것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니 실제 싸지 못해 힘든 것보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이 힘들다.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계속 이 상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크다. 먹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잠시 굶거나 죽 같은 걸 먹으며 어떻게든 조절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싸는 것은 조절이 불가능하다. 마려우면 화장실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배가 아프고 아무 때나 밀려나오니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외식, 여행 등을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일상생활이 무너지는 느낌이고 일상이라는 것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잠을 정상적으로 자지 못하니 회사에서 많이 졸기 시작했다. 이런 것 때문에 직장을 잃을까 봐 더 걱정이 된다. 지금 상황에 회사 문제까지 생긴다면 정말 끝일 것 같다.
어쨌든 어떻게든 살아야지. 일상적이지 않은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9월 23일 화요일. 다시 B 병원 소화기 내과 진료를 보러 갔다. 지난 진료 이후 거의 한 달 만이며, 중간에 CT 검사를 한 지 2주 만이다. CT 검사에서 뭔가가 발견되었기를 바라본다.
"CT 검사에서도 나온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아, 최악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을 이야기해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혹시 대장 부은 곳을 잘라내면 괜찮아질까요?"
"일단 원인은 모르겠습니다. 치료하긴 힘들 것 같아요. 대장을 자르는 건 많이 큰 수술이에요. 자르고 나서도 괜찮아 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일단 대장 자르는 것에 대해 궁금하시면 외과진료를 한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수술하는 것에 대해서는 외과에서 물어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혹시 다른 병원도 가볼 수 있을까요? 모르시겠다고 하시니 진료 의뢰서 같은 것을 써 부시면 다른 병원도 가 봤으면 하는데요."
"네, 그게 편하시면 그렇게 하세요. 써 드릴게요. 외과도 일단 예약을 해 드릴 건데 다른 곳에서 진료 보실 거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계속 모르겠다고 하니... 자기도 자신이 없나 보다. 해 줄게 없다고 내가 원하는 대로 진행하라 한다.
처음 병원에 갔던 때부터 2달 하고 일주일. 지금까지 이 병원 저 병원을 가며 한 번도 희망적이지 않았다. 계속 모르겠다는 말만 들었으며, 증상은 점점 나빠지고 좋아지지 않았다. 낙천적인 편이던 성격은 안쪽부터 썩어 들어가고 점차 우울해진다.
삶이, 일상이 무너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