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최고의 일을 꼽는다면, 단연코 포장 알바이다. 나는 포장에서 인생 적성을 찾았고, 동시에 노동이 주는 최고의 희열을 느꼈다.
학원을 정리한 후, 활동이 가능해진 시점에 코로나 팬데믹을 맞았다. 아들은 고등학교에 , 딸은 중학교에 입학했던 시점과 맞물려, 우리 집에선 혼돈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품귀현상을 겪던 마스크를 사기 위해 동네 약국 앞에서 식구 수 대로 줄을 섰다. 1인당 할당되는 마스크를 사는 게 아침 첫 일과였다. 학교는 온라인 줌 수업으로 대체되었고, 아이들은 화상 컴퓨터를 켠 채로 잠을 잤다. 선생님은 출석 확인하는 것만 20분이 걸렸고, 출석을 못하고 여전히 자고 있는 학생들을 깨우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스피커를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귀를 피곤하게 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깨워서 컴퓨터 앞에 대령시키고, 중간중간 몰래 침대에 누워 자는 지를 감시해야 했다. 상급 학교에 진학했으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잠만 자는 아이들도 불쌍했지만, 전염병에서 가족을 지키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아이들의 성적에 신경 쓰는 것은 이미 포기하고 수시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깨우는 일에만 전념하는 나도 불쌍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지쳐갔고 예민해졌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바로 일하러 나가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들하고 사이만 나빠지느니, 차라리 병균으로 가득한 밖으로 나가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구직사이트를 열심히 뒤진 끝에, 포장/검수 파트에서 적당한 알바를 찾았다. 빔 프로젝터를 공유, 대여하는 업체였는데, 업종과 관련성이 없는 유명 패션회사의 공유 오피스에 위치해 있었다. 아이들을 깨워서 컴퓨터 앞에 대령시키고 출근해도 충분했고 종일이 아닌 4시간의 파트타임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이력서를 내고 바로 다음 날 면접이 잡혔다.
나는 마스크를 낀 채 면접에 맞는 정장을 입고 오피스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부터 나는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는데, 이유는 그 건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에는 누가 봐도 패션 피플로 길거리에서 사진 찍혀도 될만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귀, 코, 입술 등에는 피어싱이 있고, 목, 팔, 손등 등은 입은 옷과 조화를 이루는 타투들이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같이 서 있는 것조차 몹시 어색할 지경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대형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영상과 빛이었다. 미래 세계에서나 볼 법한 영상들, 화려한 옷들을 들고 열정적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힙이란 이런 것이다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청년들로 가득한 그곳은 별천지였다.
나는 그 별천지에 매혹당했다. 로비에 서서 그 많은 자극들을 느끼고 받아들이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데스크에서 유심히 나를 보던 직원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자, 나는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데스크 직원에게 안내를 받고 유리창으로 안이 훤히 보이는 사무실들을 지나 빔 프로젝터 업체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 회사는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자신들도 그 회사와 이질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사무실 이사 계획이 있다고 먼저 알려줬다. 다소 고가인 빔 프로젝터를 대여해 주고 다시 수거하는 공유사업을 하고 있었고, 내가 할 일은 출근하자마자 고객들이 전날 보낸 기기들의 전원을 켜서 각 기능들을 검수하는 것과 오늘 배송 나가야 할 기기들을 부속품과 함께 잘 포장해서 택배상자를 싸는 일이었다. 내가 작업해야 하는 곳은 지하 창고였고, 입주하고 있는 회사마다 창고를 부여받아 쓰고 있었다.
내가 하기에 어려운 일은 없었고, 단순 노동의 반복이었다. 나는 다음 날 바로 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출근하면 사무실 앞에서 어제 배송 온 기기들을 실은 카트를 인계받고 지하로 내려가 검수를 시작한다. 지하층에는 이미 배송준비를 하고 있는 다른 회사 직원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 속에 끼어서 부지런히 기기를 검수하고, 오늘 배송 나갈 기기들을 포장했다. 기기의 전원을 켜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리모컨으로 빠르게 확인하고, 다 끝나면 창고의 정해진 위치에 각 잡아서 쌓아 놓는다. 그리고 그 기기들을 담아서 온 택배 상자를 규격에 맞게 분해해서 쓰레기장에 배출한다. 그다음은 오늘 배송 나갈 기기들을 송장과 같이 배열해 놓고, 택배 상자를 만들어서 뽁뽁이로 기기를 안전하게 포장한 뒤, 상자 안에 쏙 넣고, 테이프로 상자를 봉한다. 송장 스티커를 좌측 상단에 깔끔하게 붙이면서 일은 마무리된다.
4시간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내게 주어진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정도로 주문이 들어왔다. 지하에도 에어컨을 틀어주었지만, 늘 땀을 흘렸고, 눈과 손이 매우 바빴다. 나는 부끄럽게도, 몸으로 하는 단순 노동이 얼마나 머리를 맑게 하는지 이때 처음 깨달았다. 책상에 앉아 머리 굴리는 일이 상위의 노동이라 생각하고 그런 노동을 하기 위해 인생의 초반부를 열심히 공부하며 보냈다. 그런데 책상 앞에서 느낄 수 없었던 희열을 포장 알바를 하면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눈과 손이 바쁘게 움직이니 머릿속이 깨끗하게 청소되는 듯했고, 테이프로 상자를 봉할 때 각을 맞춰 일정하게 붙여지면 열과 오를 맞추는 테이프의 선이 그 자체로 아름답게 느껴지고, 가슴으로 성취감을 느꼈다. 마지막 송장 스티커를 균형에 맞춰 붙이는 게 화룡점정이다. 스티커 떼서 붙이는 맛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노동을 한 게 아니라, 예술을 했다.
나는 그 일을 하면서 창고 안 다른 회사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힐끔힐끔 엿보기도 했는데, 어떤 아가씨는 내가 일하는 동안 계속 한 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비즈들을 특수 실에 엮어서 액세서리를 만들고 있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작은 비즈와 구슬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서 형형색색의 팔찌, 목걸이들이 탄생되었다. 뒷모습만 보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그녀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그 액세서리를 만들었을 거라는 걸.
출근하면서 패션피플들로 눈 호강을 하고, 퇴근하면서 땀 흘린 개운함을 느끼는 생활은 10개월 정도 계속되었다. 월급날에는 가족들과 외식을 했고, 컴퓨터 앞에서도 잠을 포기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용돈을 쏘았다. 돈을 벌면서 감사했고, 쓰면서 뿌듯한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교사였을 때는, 늘 불평이 가득했고, 월급은 왜 이리 작은지 성토하기 바빴다. 하루의 끝은 찝찝했고, 집에 돌아가서도 인상 쓴 얼굴이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교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내 인생 적성을 찾았지만, 그 행복은 10개월 후 끝이 났다. 회사가 먼 곳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출퇴근이 쉽지 않아, 내가 일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단언컨대, 그런 일, 아니 비슷한 그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면, 나는 꼭 그 일을 하고 싶다. 그때처럼 내 인생에서 머리가 맑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한동안,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비슷한 공고를 찾았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일은 다시 올라오지 않았고, 가장 유사한 알바는 의류 쇼핑몰 포장 알바였는데, 집에서 출퇴근이 쉽지 않아서 포기했다.
언젠가 TV에서 지금은 은퇴한 남자 아이돌이 쿠팡 택배 알바를 하고 있는 사연을 보았다. 그는 돈 때문이 아니라, 순수히 성취감과 즐거움 때문에 택배 알바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금전적으로 어려운 게 아니냐, 아이돌에서 은퇴하면 그런 일거리 밖에 없을 거이다, 등등의 추측을 했지만,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했다. 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쓰는 일은 분명히 피곤하고 힘든 일이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거의 0에 수렴할 거라고 예상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포장 알바 얘기를 할 때 제일 재밌다.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 포장 알바가 나를 구했고, 삶의 한 고비를 부드럽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 인생 최고의 노동은 포장 알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