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
공공기관 신입직원을 뽑을 때, 면접 단계에서 반드시 사내 인사 관련 관리자 외에 일정 수의 외부 면접관이 참여하게 되어 있다. 해당 공공기관의 채용이니, 그 기관 사람들이 뽑는 게 당연하지만, 그 당연한 과정에 종종 비리가 개입될 가능성이 있고, 또 그런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외부 면접관이 필요해진 지 오래되었다.
나는 공공기관 외부 면접관의 풀을 운용하는 컨설팅 업체의 이사로 일했었다. 채용 시즌이 되면 면접관의 특기에 맞는 공공기관으로 배치하는 일과 직접 현장에서 면접위원으로서 채용에 관여하는 일을 했다. 예전에는 정직원을 뽑는 일이 다수였지만, 요즘엔 채용형 인턴으로 먼저 채용해 보고, 계약된 기간이 끝나면 각 기관에서 정직원 전환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한다. 그러니까 내가 관여하는 일은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한 면접자들의 집단 토론이나 1대 1 토론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은 다수가 지방으로 이전해 있다. 그래서 채용 시즌에는 KTX 표를 예매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자차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정해진 시간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대중교통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나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여행 목적이 아닌 업무, 출장 목적으로 KTX를 타게 되었는데, 기차 안에서의 마음가짐은 사뭇 달랐다. 이전에는 맛있는 간식을 준비하거나 보고 싶은 책, 혹은 음악 리스트를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여행을 했다면, 면접위원으로서 기차를 탈 때는 그 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보완하면서 가느라 도착역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복장도 정장차림이어서 여름에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기차역에 내리면 보통은 줄을 서서 택시를 탄다. 왜냐하면 공공기관이 있는 곳은 풍경 좋은 산 속이거나 대중교통이 그다지 편하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택시가 나았다. 기관에 도착해서 잠시 쉬었다가, 오늘 면접을 위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는다. 그리고 해당 면접실에 들어가는데, 이동할 때 보통은 면접자들이 모여 있는 대기실도 옆에 있어서 잠시 눈길이 머물 때도 있는데, 가능하면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애쓴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문을 힘들게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사정없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까만 정장, 하얀 셔츠, 면접용 구두, 면접용 머리스타일, 모두 똑같아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각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외우거나, 준비해 온 자료들을 읽고 있었다.
면접실에 가면 사내 인사 담당자와 같은 수의 외부 면접관이 있는데, 그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오늘의 면접에 대해 회사에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점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면접은 오전, 오후로 나뉘는데, 형태는 집단 토론이거나 1대 1 면접 등 회사 사정에 따라 다르다. 나는 주로 행정직 면접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조직에 잘 적응할지,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잘 낼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 부문에 걸쳐 점수를 내고 모든 면접이 끝나면 총점을 합산하여 면접관 대표에게 전달한다.
지원자들에게는 각자 하얀 A4지 한 장과 볼펜 한 자루가 주어지는데, 이것은 상대의 발언을 메모하거나, 자신의 발언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면서 보여주는 모든 무언의 바디랭귀지가 평가대상이다. 토론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치고 나와 사회자 역할을 맡게 된다. 물론 사회자 역할을 한다고 해서 특별 점수가 부여되지 않는다고 미리 못 박고 시작한다. 그러나 이런 적극성도 어떻게든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매 조마다 토론을 이끌어 가는 사회자는 금방 정해지곤 했다. 사회자 역할의 지원자는 발언의 정리와 순서만 말하는 게 보통이고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자 역할의 지원자들을 보면 분명, 어디선가 코칭을 받고 온 것이 분명한 똑같은 멘트를 한다. 면접 학원이든, 스터디모임이든, 어디서든지 미리 준비한 것은 확실하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특기가 필요한 기술직의 경우에는 보통 그 직무에 맞는 역량을 갖고 있는지 세부적인 평가가 더 많다. 참, 투명성을 위해 면접실마다 감사위원이 한 명씩 들어가는데, 보통은 해당 기관의 관리자가 맡는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채용 두 번째 과정인 면접의 흐름이다.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 감상과 생각이니 현직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과 같지 않음을 미리 알린다.
나 이외에 다른 면접관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원자를 배제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정장, 즉 셔츠, 긴 팔 재킷, 바지나 치마, 정장구두, 정형화된 면접머리스타일, 이 중에 하나라도 튀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재킷이 없거나, 색깔이 있는 구두를 신거나, 여성인 경우 머리 모양이 승무원 준비생 같지 않거나, 남성인 경우 머리가 정돈되지 않았거나, 하여간,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은 복장이어야 공공기관의 인재상에 맞다. 더워서 반팔 와이셔츠를 입거나, 체크가 섞인 셔츠, 갈색 구두 등은 일단 공공기관의 인재답지 않게 튀는 모습이다. 메모를 하면서 집중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볼펜을 손가락으로 돌리면 그것 역시 마이너스였다. 토론 주제에 대해 적확한 내용을 말하지만 긴장했거나 집중하느라 더듬더듬 말하는 건 마이너스, 뜬 구름 잡는 얘기를 하지만 목소리가 좋고, 뭔가 언변이 좋아 보이는 것보다 안 좋다. 뺀질뺀질해 보이므로 자연스러운 유머를 구사해도 안된다. 의자에 허리를 기대어도 태도가 좋지 않으므로 마이너스다.
나는 공공기관의 인재상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여기는 사기업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8월 땡볕에 반팔 와이셔츠가 왜 문제가 될까? 집중할 때 나도 모르게 볼펜을 돌리는 행동이 왜 산만한 걸까? 머리를 하나로 단정히 묶어서 왔으면 됐지, 그물망에 넣어서 똥머리를 하지 않은 것이 왜 문제가 될까? 내 옆에 앉았던 해당 기관의 부서장은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말 잘 듣고, 하나만 얘기해도 여러 가지를 해 오는 직원을 뽑고 싶다고. 코웃음이 났지만, 아무 말하지 못했다. 무조건 순응하고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인재라...... 요즘 MZ들은 책임 없는 권리만 주장한다는 말은 덤으로 들었다. 회사 측 인사들은 토론에 적절하게 참여하는 것은 둘째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를 크게 보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무난한 인상에, 무난한 태도를 보여주고, 적당히 순해 보이는 사람들을 선호했다. 토론에 진심으로 참여하고 재치를 보여주거나 날카로운 센스를 보여주는 사람들은 그들 말로 "튀는 사람"이었다. 나는 간혹 뒤바뀌어진 등수에 항의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여기는 사기업이 아니다,라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이 일을 1년을 했고, 공공기관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그리고,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어떤 "경합"에서 떨어질 때는 꼭 그 사람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격이란 두 글자를 받아 들기까지 "우주"의 수많은 기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습도 등등의 어이없는 요소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 불합격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지 말라. 당신은 운이 좋지 못해서 떨어졌을 뿐,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1차 필기를 뚫었다는 것은, 당신이 그 공공기관의 합격권에 들었다는 것을 보증한다. 약 1.5배든, 1.2배든 간에 성적순대로 뽑혀있을 것이고, 면접이란, 1 배수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 중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큰 문제가 없다면 성적순대로 1 배수를 합격시킬 것이고, 만약 면접관들의 눈에 심각한 하자가 보인다면, 줄을 선 후보들 중 순서대로 보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면접과정에서 심각한 하자를 보인 지원자에게 낮은 점수를 주고,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비슷한 점수를 주어야 원래 필기 점수의 순서대로 입사할 수 있다. 이것은 내 생각이다. 실제로는, 면접에서 필기시험에서 줄 세운 성적이 바뀌고, 면접위원들의 "호감상"에게 점수가 몰빵 된다. 상급 관리자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관리상의 어려움으로 뽑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 일을 하고 난 뒤, 지금까지 내가 거쳐 온 모든 경합과 경쟁에서 얼마나 많은 우연적 요소가 결합되어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했을까 생각했다. 필기시험의 성적만이 불변의 요소이고, 나머지는 정말 우주의 기운과 상생해야 얻을 수 있는 운의 영역이었다. 나 같은 면접위원만 있으면 뽑혔을 사람이, 나와 반대편에 서 있는 면접위원들에게는 냉대당할 수 있다. 오전에는 모두 바짝 정신 차리고 점수를 매기므로 점수가 짜게 나온다. 오후가 되면 슬슬 분위기가 늘어지고 계속 똑같이 우수한 지원자들을 보게 되므로 점수가 후해진다. 다시 오전에 했던 박한 평가표를 꺼내서 점수를 조정한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기대하듯이 컴퓨터처럼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을 수 없다. 조상들이 얘기하는 "운칠기삼"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요즘 세상에 "기"를 못 갖춘 젊은이들은 없다. 인생의 많은 부분이 7할을 차지하는 "운"의 영역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의 인과관계가 정밀하게 딱 떨어져 일어나는 것은 드물다. 내가 그 시험에서 떨어진 건, 내가 실력이 정말 모자라서가 아니라 오늘따라 유난히 점수가 박한 면접위원이 배당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와 맞지 않은 회사 관계자가 면접장에 들어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일이 실패했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는 말자. 나와 맞지 않는 상황만큼, 나와 맞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어떤 때는 나를 편파적으로 좋아하는 면접위원 때문에 합격할 수도 있는 거니까. 간절히 원했던 일이 무너졌다면 “운칠기삼"이란 명언을 기억하고, 내 잘못은 3할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