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
코로나 팬데믹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안 되는 "집합금지"가 있었다. 식당, 카페가 직격탄을 맞았고 자영업자들은 절규했지만, 풍선 한쪽이 눌러지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듯, 조용히 활황 중인 분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배달전문 음식점"이었다.
나는 포장알바를 그만두고 적적한 마음을 달래고 있던 중, 음식배달 플랫폼과 배달전문 음식점의 성업을 지켜보았다. 마침, 배달전문 음식점에서 주방일을 하고 있는 시조카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시조카가 일하고 있는 음식점은 피자와 치킨을 같이 운영하는 업체로서, 한 달 수익이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와, 자신도 이 일을 빨리 배워 1인 가구가 많이 사는 곳에 배달전문 파스타집을 차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파스타가 마진이 많이 남는다는 얘기와 함께.
나는 귀가 솔깃했다. (이때의 나를 지금 돌이켜 보면, 퇴직하고 퇴직금 사기당하는 흐름에 올라탄 게 확실한 상황이었다. 어쨌든, 알바에서 끝난 것은 온 우주가 나를 도운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홀이 없는 임대료가 싼 상가에서 주방설비를 들여놓고, 주문을 처리해 내고 있었다. 나는 원래가 성급하고 호들갑이 심한 인간이다.
그래도, 그 당시 제일 멀쩡했던 나의 결정은, 음식점을 창업하기 이전에, 알바를 6개월 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창업하려면, 그 일에 대해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알바 사이트를 열어 집에서 가까운 배달전문 음식점 주방 보조 구인광고를 찾았다. 집과 가까운 곳에는 불행히도 없었고, 대중교통이 다소 애매한 먼 거리에 위치한 "숯불 닭구이" 음식점이 있어서, 무작정 지원서를 냈다. 주방보조라고 했으니, 일은 충분히 배울 만하겠지 싶었다. 지원서를 내자마자, 문자가 왔다. 그냥 내일부터 일하러 나오라는 사장의 문자였다. 여기서 짐작되는 것이 있는가? 면접도 안 보고 바로 일하라는 것은 일손이 매우 급하다는 뜻, 그리고 모종의 사유로 사람들이 수시로 취직과 퇴직을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 한 몸 바쳐서 얻은 귀중한 꿀팁 ㅠ 이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지도를 보고 찾아간 곳은 소형빌라들이 빽빽하고 자동차도 양방향을 겨우 통과하는 서울의 재개발 예정지였다. 가게 바깥에는 사장이 의자에 앉아서 길거리를 보고 있었는데, 내 선입견으로는 아, 가까이에서 엮이고 싶지 않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움찔하고 서 있는데, 사장이 먼저 나를 발견했다. 사장은 내게 일주일간의 출퇴근 스케줄을 알려주고, 자신은 지금 홀이 있는 음식점도 운영하고 있다며, 거기에 가봐야 한다고 자리를 일찍 떠났다. 주방에는 이미 한 아가씨가 일하고 있었고, 그 아가씨가 주방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장은 나에게 그녀의 지시에 잘 따르고 배우라는 말을 남겼는데, 내가 들어가서 꾸벅 인사를 하니, 서툰 한국말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베트남사람이었고, 사장의 본업인 홀이 있는 음식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여기로 파견시킨 것이었다.
그녀가 가르쳐준 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배달 플랫폼 주문을 포스기에서 처리하기->닭꼬치를 기계에 넣고 알맞은 시간에 수시로 돌려주기->리뷰 평점을 위한 서비스인 단촛물 밥과 닭튀김 가라아케를 준비하기->배달 기사에게 전달하기
이렇게 써 보니 공정이 간단해 보이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닭고기를 꼬치에 끼워서 양념을 묻히고 타지 않게 계속 돌려주어야 하며, 단촛물을 밥에 넣어 틀에 넣고 예쁘게 찍어내고, 가라아케용 튀김반죽을 만들어 닭고기를 담그고 알맞은 온도의 튀김기에 넣고 일정한 시간마다 뒤집어서 튀겨야 한다. 20분 이내에 이 과정을 처음부터 제대로 해내서 배달기사에게 넘기기까지는 그래도 며칠 동안의 시간은 필요할 듯싶었다.
베트남 직원들만 써도 식당은 충분히 돌아가는데, 한국인 아줌마인 나를 뽑은 것은, 빌라동네의 특성상, 고령의 노인들이 많고, 그들은 배달앱을 쓰지 않고 직접 전화로 주문을 하는데, 그들의 주소를 베트남인이 적을 수가 없었던 것이 하나고, 그다음은 배달 플랫폼에서 컴플레인이 생기면 베트남 직원이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 둘째 이유다.
나는 베트남 직원이 있으면 별 문제가 없을 걸로 보았다. 그녀의 지시를 따라서 일을 배워가며 배달플랫폼에 대응하면 수월할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매번 나와 일하는 게 아니라, 사장의 본업인 홀이 있는 식당에 자주 불려 가서 나 혼자 일을 떠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의 상식과 사장의 상식이 충돌하는데, 나는 일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그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사장의 입장에서 나는, 하루 일해 보면 다 할 줄 아는 완성형의 알바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있을 때 나는 우왕좌왕하기는 했지만, 나름 문제없이 일을 처리했다. 연로하신 분들이 불러주는 정확하지 않은 주소도 컴퓨터에서 다 찾아서 배달기사를 배정했고, 기사님들 대응도 신속하고 친절하게 했다. 주방일도 각종 반죽의 비율과 시간을 기억하며 루틴대로 해내려고 애썼다. 양념이 조금만 많아도 닭꼬치는 숯불에 타버리므로 요령 있게 굽는 방법도 배웠다. 그러나, 아직은 베트남 직원이 필요했다.
셋째 날, 베트남 직원이 없었고, 나는 정신없긴 했지만, 그래도 주문 들어온 것은 제대로 해서 배달기사에게 전달했다. 마지막 조리도구, 시설 청소도 깨끗이 하고 뿌듯하게 퇴근했다. 넷째 날, 출근하자마자 보이는 건, 사장이 주방 한가운데에 의자를 놓고 앉아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쌍욕을 하는 모습이었다. 숫자와 강아지를 동원한 각종 욕들을 베트남 직원에게 퍼붓고 있었고, 그 직원은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내가 등장하자, 그 화는 내게 왔다. 사장은, 일도 못하는 네가(사장은 반말이 디폴트다) 일을 얼마나 거지같이 했길래, 배달앱 평점이 4점대가 나왔느냐, 욕과 고성이 난무했다. 어제 내가 내보낸 배달음식 중 하나가 평점 4점대를 받아서 전체 평점을 5점대로 유지해야만 하는 사장이 화가 난 것이다. 배달 음식점이 평점에 연연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으나, 이렇게 욕설을 들을 만한 일인지는 몰랐다. 머릿속에 '원래 음식점이 다 이런가? 식구들한테는 큰소리치고 나왔는데, 그만둔다고 하면 면목이 없는데? 이것도 사회생활이니까 참아야 하겠지? 아, 근데 욕설은 못 참겠는데? '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사장은 핸드폰 시계를 열더니, 10분 내에 닭꼬치를 조리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배운 대로 조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해도 시간제한 때문에 머릿속이 하얀데, 사장은 쉬지 않고 숫자와 강아지를 소환해서 욕설을 했다. 결국 나는 튀김반죽 비율을 틀렸다. 영화처럼, 소리는 삭제되고, 영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갔다. 사장은 나무 막대기로 나를 후려칠 것처럼 휘두르고, 욕설을 포함한 고성을 지르며 그 못생긴 얼굴로 침 튀기며 내게 다가왔고, 나는 뒤로 서서히 물러났다. 옆에 있는 베트남 직원은 영혼 없이 바깥을 보고 있었다.
아,,,,더는 못하겠다, 싶었다. 앞치마를 벗어서 조리대에 올려놓고,
"사장님, 욕은 못참겠습니다. 지금까지 일한 것만 잘 처리해 주세요."
사장은 안 그래도 툭 튀어나온 눈이 더 튀어나와서 왜 그만두냐며 난리를 쳤다. 귀가 아팠지만, 참고 들었다. 그리고 인사하고 음식점을 나왔다. 그동안 청소하고 마감하고 퇴근하느라,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까지 탔지만, 택시비는 운운하지 않았다. 그것까지 얘기했다간 진짜 한 대 맞을 분위기였다.
나만 운이 나쁜 건지, 원래 음식점의 세계가 그런 건지 확실하지는 않다. 어쩌면 내가 진짜 샌님행세만 하며 적응을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정신이 나가도록 혼구녕이 나다 보니 내가 어땠는지 판단도 어려웠다. 여기서 나는 내 마음이 편하게 '이 음식점만 이런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1주일 정도 쉬고 다시 알바를 찾았는데, 그것은 다음 편에 나올 "샐러드가게"알바다. "샐러드"라면, 왠지, "숯불구이 닭꼬치"와는 차원이 다를 것 같았다. 그런 기대를 충족했는지는 다음 편에 쓰겠다.
(참, "숯불구이 닭꼬치" 식당에서 의아했던 건, 뜻밖에도 숙주나물의 공급처였다. 닭꼬치를 그릇에 깔기 전에 숙주나물을 가니쉬 겸 그릇처럼 까는데, 숙주나물은 미얀마 산이었다. 콩나물처럼 한국에서 흔히 잘 키워낼 수 있는 채소류 같은데, 얼마나 싸길래 미얀마라는 먼 곳에서 온 숙주를 쓰는 걸까. 누구 아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