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샐러드가게 알바

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

by 방구석 관찰자

나는 "숯불구이 닭꼬치"가게에서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샐러드가게 알바에 지원했다. 그냥, 그 가게 사장님이 이상한 거라고 합리화하고, "샐러드"가 주는 어감처럼 이곳은 상큼 발랄하고 담백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집 근처 대학병원 내에 있는 프랜차이즈 샐러드가게에서 주방보조를 구하고 있었다. 교통도 좋고 만드는 음식이 샐러드인 것도 좋았다. 면접을 위해 나온 사람은 프랜차이즈 회사 직원이었고, 간단한 인터뷰 끝에 약간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사람이 바뀌어서 이번에는 나이가 좀 있는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자꾸 이동이 많으니까, 생활력 강한 아줌마로 바꿔보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나도 인내심은 좀 없는 편인데,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좀 떨어졌으나, 일단 프랜차이즈 업체니까 시스템화되어 있는 그 무엇을 기대했다.


샐러드 가게는 병원 내 지하 푸드코트에 있었고, 아무래도 병원인지라, 몸에 좋은 샐러드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 매장은 새로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고, 직원들끼리 서로 손발을 맞춰보는 과정으로 보였다. 주방장은 나이가 좀 있는 여성분이었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내게 야채 기본 손질부터, 설거지, 그리고 도구 살균기 사용법등을 가르쳐주었다. 이번에는 왠지 주방장도 친절하고, 같이 일하는 알바들도 대학생들이라, 일을 열심히 잘 배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처음 이틀간은 주로, 기본 야채 손질, 소스 준비, 설거지 등, 어렵지 않고 성실하기만 하면 되는 일을 했다. 정말 뛸 듯이 기뻤던 일도 있었다. 하루 영업을 마감하고 나면, 그날 잘 못 만든 샐러드 제품이 꽤 나온다. 아보카도가 예쁘게 잘리지 않았거나, 손님의 요구에서 종류가 한 가지 빠졌거나, 하는 등의 불량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걸 모아놨다가 마감일을 하는 알바에게 무상으로 주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제품이라서 우리는 양손 가득 샐러드상자를 가지고 퇴근했는데, 집에 도착하면 식구들의 무한 환영을 받으며 상자를 까서 먹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몸에 좋은 야채, 닭가슴살, 연어, 과일 등등이 상품가치가 없는 이유 하나로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해 주었고, 가족들은 내가 샐러드가게에서 일하는 걸 온몸으로 환영했다.


나는 주로 마감시간을 담당했는데, 나의 촉은 어김없이 3일째에 발휘되었다. 음식점은 원래 주방장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음식을 잘 모르는 사장은 주방장한테 절절매기도 한다. 칼국수 집을 운영하는 지인은 주방장을 상전 모시듯 하며 기다시피 한다. 칼국수 집의 가장 큰 킥(!)은 김치인데, 이 주방장은 가게 셔터문을 내리고 아무도 없는 새벽에 홀로 김치를 만든다고 한다. 내 지인은 주방장이 당장 오늘이라도 안 나오면 큰 일이기 때문에, 일반인이 들으면 헉! 할 수 있는 월급과 각종 복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음식점에서 주방장이 갖는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샐러드 가게의 주방장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한테 방울토마토를 씻으라고 해서 물을 틀고 방울토마토를 넣으려고 하면, 마요네즈 통 뚜껑을 따라고 한다. 그래서 마요네즈 통 뚜껑을 따고 있으면, 방울토마토를 왜 안 닦냐고 소리친다. 에이씨, 같은 감탄사는 덤이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어 허둥대면, 갑자기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머리 식히러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 사라진다. 그러면 다른 알바와 어찌어찌 주문을 쳐낸다. 한참 후 다시 돌아와서는 이 샐러드가게의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지는 않았다. 그냥 자기 화에 쏟아내는 말인데, 그 얘기의 끝은 월급이 작다로 맺어진다.


어떤 지시를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허둥대다가, 욕을 숱하게(상상에 맡긴다) 먹고, 어느 날은 얼굴이 벌게져서 주방장한테 물었다.(따진 게 아니라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먼저냐고. 그랬더니, 주방장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르다가 앞치마를 벗고 나가더니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오지 않는 주방장을 기다리다가 본사 직원에게 전화를 하고 사정을 말했다. 직원은 그런 일이 익숙한 듯, 가벼운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나이가 좀 있는 사람한테는 안 그럴 줄 알고 나를 고용했다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오히려 나에게 무심히 물었다. 나는 마감 때마다 싸들고 가는 샐러드상자에 이미 중독되어 있었지만, 왠지 내가 굼뜬 거 같기도 하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거 같기도 해서(지금은 이것이 가스라이팅인가 싶다.),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주방장이 계속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걸 보면 그냥 내가 싫은 것도 같고, 그럼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흐름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뭐가 문제였는지 확실치 않다.


나와 같이 조를 이뤄 일했던 알바는 이런 상황이 익숙해서 괜찮다며 자기는 남아서 일하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싫어서 나왔다기보다는 주방장의 눈 밖에 나버림으로써, 가게 운영에 차질을 빚는 원인이 나인 거 같아서 미안했다. 다른 알바를 구하기 전까지 1주일을 일했는데, 주방장은 격일로 나가서 들어오지 않았다. 원래 그러려니 하고 남았어야 했나 후회도 살짝 있었지만, 확실히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으므로, 왠지 내 문제인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사실 지금도 알쏭달쏭하다. 원래 음식점 일이라는 게, 이런 식인 건지, 아니면 내가 못 버티고 번번이 튕겨나가는 건지, 그도 아니면 둘 다 인지 말이다. 여하튼, 두 군데에 걸친 음식점 알바는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아닌 걸로........ 그래서 누군가가 음식점 창업을 얘기하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창업 허들이 낮은 것이 음식점이기도 해서, 여기저기서 음식점 창업 얘기가 나오는데, 글쎄.......... 나처럼, 돈에만 눈이 어두워, 음식점 창업이나 할까? 이런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가 TV에서 많이 보는 스타요리사들은 내가 겪었던 이 과정은 물론, 온갖 상황을 다 겪고 나서 요리사 중의 요리사로 거듭났으니, 그들은 진정한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길은 아닌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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