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대치동 학원 상담실장의 세계

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

by 방구석 관찰자

나는 퇴직 이후 학원을 차렸다가 건강문제로 성장하는 학원을 양도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었다. 당시에 가장 큰 문제는 체력이슈였지만, 학원을 몇 달 운영해 보니,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학원 타깃을 초, 중학생에게 맞춘 것이 좋은 걸까, 그리고, 1명 이상의 강사를 채용하면 학원 운영이 어떻게 달라지는 걸까, 고등학교 교사였던 내 진로진학상담 스탯을 활용한다면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현장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느낀 궁금증들을 해결하고 싶었다. 나는 대한민국 학원 1번가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상담실장에 지원했다.


내가 지원한 학원은 대치동의 대형 학원이 아니라, 원장도 강의를 하고, 강사도 여러 명인 중소학원에 속했다. 대형 학원의 상담 실장도 가능한 스펙(자녀의 입시경험, 대졸, 학원운영 경험)이었지만, 나는 분업화된 일(학부모의 민원 처리, 학원료 수납 등) 말고, 내가 학원 운영의 전 영역에 관여하고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원했기 때문에 비교적 소규모의 학원에서 일하길 원했다. 면접은 화기애애했다. 면접을 보는 중에도 학원 등록을 위한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으며, 수강생의 90% 이상이 고등학생인 입시전문이었다. 원장은 밀려오는 학생을 감당하기 위해 학원을 확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나에게는 일반적인 상담실장의 역할 및, 이전 주먹구구로 받았던 수강료의 체계화를 원했다. 물론, 학원용 운영 프로그램이 따로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이 학원에는 영수증 무더기, 수기로 적은 장부, 기록하다 만 엑셀 장부, 아무도 쓰지 않은 학원 운영 프로그램 이렇게 4가지의 회계장부가 존재했다.


나는 내가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의 마인드로 일을 했다. 학생들을 익히고, 수강료를 결제하고, 학부모 상담 전화가 학원 방문으로 이어지게끔 중개역할을 하는 등의 기본적인 일 이외에, 학원 비품이 중구난방으로 쓰이는 걸 통제했고, 방치되고 있는 학원 시설 일부를 수리했다. 시간이 부족한 강사들의 식사문제와 교재 준비를 신속하게 도와주었고, 그들의 불편사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저녁 10시에 끝나는 학원 특성상, 시간이 부족하면 일찍 출근해서, 회계장부를 학원 운영프로그램으로 단일화하는 작업을 틈틈이 했다. 원장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나를 전적으로 신뢰했고, 어느 순간부터 학원 운영을 하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고민도 얘기하기 시작했다.


원장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는 중에 내가 알게 된 학원의 운영 흐름과 문제는 이랬다. 원장은 대치동 한복판에서 거의 개인 과외나 다름없는 소수의 학생들로 근근이 버틴 세월이 길었다. 그리고, 일처리가 다소 희미한 면이 있어서, 실제 운영에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수강료를 포함) 두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친언니와, 동네 친구 A다. 친언니가 도와줄 때는 수기 장부로 기록되었고, 동네 친구 A가 도와줄 때는 엑셀로 관리되었다. 그래서 수강료 기록이 중구난방이었고, 어디서 돈이 새는지도 모르게 관리가 엉망이었다. 나는 학원 운영프로그램으로 일치시키려고 했으나, 중간중간 비거나 잘못 기재된 금액에 대해서는 맞출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둘은 수시로 내 업무에 관여했고, 나는 3명의 관리자를 모시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원장에게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데, 우연이 이 원장을 스쳐갔던(계속 꾸준히 배우던 학생이 아니라, 수능 직전에 몇 개월을 다닌) 학생 한 명이 서울대에 합격한다. 원래 그러하듯, 이 서울대 합격생이 스치기라도 한 학원들은 모두 서울대 합격생 아무개를 배출했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이곳은 그중 하나로 갑자기 서울대 버프를 받기 시작해서 학생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이 현상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계실 것이다). 물론 원장이 기여한 바도 있었겠으나, 오랜 교직경험으로 보았을 때, 서울대 합격생은 어느 학원을 갔어도 서울대에 합격했을 능력을 이미 갖춘 학생으로서, 특정 학원의 영향이 있었는가, 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원장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갑자기 찾아온 행운으로 학생들이 늘어나자, 급하게 학원을 확장했고(여기까지는 나의 경험과 일치한다), 이 학생들의 거품이 언제 꺼질지 전전긍긍했다. 가장 많은 인원이 있는 고 3이 졸업하고 나면 고 1,2가 새롭게 충원되면서 안정적인 수요의 흐름이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재는 학생 수가 역 피라미드 형태여서, 수입의 감소가 명약관화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받지 않았던 중학생들까지 새로 받아서 계속적인 선순환이 생기기를 원했다. 중학생들의 문의도 간간이 있었으나, 주로 돼지엄마(엄마들에게 입시정보를 제공하고, 그녀들을 이끌고 다니는 리더 격의 학부모)가 중학생 10여 명을 끌고 오겠다는 거여서, 원장은 난색을 표했다. 그런 경우, 들어올 때도 왕창 들어오지만, 학원을 그들의 뜻에 좌지우지하다가 맘에 안 들면, 우르르 나간다는 것이다.


원장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충분히 이해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원장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직원들, 즉 월급강사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다룰지에 대한, 리더로서의 태도였다. 학원 수강생들은 일단 원장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다. 그러나, 원장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면, 강사들에게 적정한 배분이 되게끔, 강사들의 명성과 힘도 키워주고, 그들이 성과를 내는 것이 자신의 성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강사들의 반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가면 자신이 채가는 게 다반사였고, 자신의 평판관리에만 신경 쓰며 강사들의 사기를 꺾었다. 그리고, 말수가 별로 없지만 자신의 몫을 해내는 사람과 입에 발린 말을 잘하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부당하게 차별했다. 거기에 대한 강사들의 불만이 이미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원장은 자주 내 자리에 와서 내 얘기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아래와 같은 의견을 여러 번 피력했다.

"원장님, 대치동 대형학원이 처음부터 다 대형이 아니었고, 원장님과 같은 상황이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중소학원에서 대형으로 점프하게 된 때에는 원장 혼자서 학생들을 다 감당한 게 아니라, 강사들도 명성을 올리면서 커 갈 수 있게 서포트를 해줬을 거고, 그런 강사들이 학원생들을 고르게 수용하면서, 저절로 대형으로 성장한 거죠. 강사가 커져서 학원을 나가 자기 학원을 차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요. 그런 강사도 있지만, 적정한 대우를 해서, 학원 내 입지를 키워주면 학원에 남아 학원의 명성을 키워주는 거예요. 언제까지 원장님이 많은 학생들을 감당하실 수 있을까요? 물론 학원을 선택할 때는 학원의 이름인 원장님을 믿고 오겠지만, 다른 강사들의 질도 균일하게 좋다면 자연스럽게 이 학원의 전반적인 수준이 좋다고 생각하고 다른 강사의 반에도 기꺼이 들어갈 거예요. 원장님은 상징적인 존재로 계시고, 강사들 관리하는 것을 첫 번째로 삼으셔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원장은 내 말이 맞다고 신뢰했지만, 그대로 행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불안은 여전히 자신의 명성이 학원의 명성이라 생각하게 하고 강사들의 우수학생들을 뺏었다.


내가 학원을 그만둔 직접적 이유는 이것 때문이 아니었다. 대치동의 한복판은 강남 한복판답게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연예인지망생들도 많았다. 우리 학원에는 부모님이 누구시니, 물어보고 싶은 아름다운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아픔은 어딜 가도 남자들이 그녀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 여학생은 이전 학원에서 학원 강사의 위험한 접촉 때문에 소송 운운하다가 간신히 무마되고 우리 학원에 왔다. 이 사실은 우리는 물론 일부 학생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장이 총애하는 남자 강사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무릎을 꿇고 마는데 부적절한 신체접촉으로 여학생은 상담실장인 내게 그 사실을 먼저 알렸고 나는 원장에게 알렸다. 나는 강경하게,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가든, 원칙을 어기고 민원과 소송의 여지가 있는 남자강사를 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장은 그 남자강사를 아끼고 있었고, 그 자신도 여성임에도 이런 문제에 대한 민감도가 낮았다. 아마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어서 그랬으리라, 지금은 이해하려 해 보지만, 학교 현장에서 수많은 민원과 소송을 목격한 나로서는 원장의 판단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 여학생의 부모가 강력히 항의하고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했고, 원장은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한 채, 초조하게 시간만 보냈다. 나는 더 이상 진흙탕 속에 있기 싫어서 그 학원을 그만두었다.


내가 그만두었을 때, 원장은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학원 일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고, 원장의 마인드로 일했으나, 그렇게 중요한 일에 대한 가치판단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스타트를 하고 그 뒤에 그 남자강사를 제외한 강사들이 줄줄이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도, 그 학원은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학원생을 서울대에 보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 사실에 기꺼이 고가의 수강료를 내려는 학부모들이 있는 한, 대치동의 학원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기적 이게도, 나는 내가 직접 운영하는 부담감 없이 '책임 없는 쾌락'을 누렸고, 책상 앞 샌님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도 영업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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