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직업수집가가 되었는가-최종
나는 정부부처 산하, 의료용 마약을 관리하는 공기관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리고 모 결혼정보업체 상담매니저를 하면서, 결혼을 원하는 회원들을 유치해서 계약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두 직장 모두 "정보"와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나는 퇴사와 동시에 "비밀유지 서약서"라는 것을 작성했다.
두 직장에 대해 이전에 쓴 글 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내용을 기술할 수 있고, 독자들도 훨씬 흥미진진할 걸로 예상한다. 그러나, 밝힐 수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마약 문제에 대해 미디어보다 먼저 접하는 숨겨지고 달콤한 비밀들과 일을 하다 보면 영화에 나오는 정보기관의 요원으로 빙의되었다. 나의 영업력을 시험하고 싶어 들어간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평생을 샌님으로 산 내가 어마어마한 인싸력으로 결혼 생각이 없던 젊은이들까지 혹하게 만든 언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에, 내가 가진 스탯이 하나씩 더 늘어난 소중했던 경험이다. 나는 세상의 이면을 혼자만 들춰보고 유랑했다는 우쭐한 기분이 들었으며, 많은 사교모임에서 입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에피소드들을 겪었지만,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비밀이랍시고 꽁꽁 지키고 있는 정보가 대중들은 이미 알고 있는 별 거 아닌 정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직업윤리까지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 노동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그 역할에 빙의하기, 계약관계가 끝나면 내가 했던 노동에 대해 예우를 지키기, 이것이 내가 노동을 대하는 예의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오랜 시간 몸담았고, 애증이 교차하는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서술을 생략하겠다. 처음, 이 브런치북을 시작할 때는, 결기에 가득 차서 다 까발리고 말 거야,라는 생각으로 임했지만, 글을 한 회 한 회, 써 나가는 도중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른바 사심에 가득 차 '확증편향적' 생각도 있고, 내가 일했던 조직에 구정물을 끼얹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글로 학교를 난도질해봐야, 논란만 불러오고 바뀌는 게 없는 자명한 현실에서, 나 혼자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일까 하는 패배감도 있다. 그 안에서 대면하고 이겨내지 못한 실패자로서 퇴직 후, 구시렁대는 것이 못나 보이기도 했다.
현업에서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재취업의 길에서 고민을 한다. 늦은 나이의 새 출발에 대해 적대적이기까지 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그것은 아마 3D의 일이거나, 자기 사업인 자영업뿐일 것이다. 브런치에 올라온 어떤 글을 보니, 스타트업 인사부문장인 듯한 작가님이 연배가 있는 경험자를 신입으로 쓰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체험기를 올려주셨다. 그것도 이해되지만, 나이라는 것이 일단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되는 한국사회에서는 나이를 초월한 직급이 매우 어렵고, 그 작가님이 쓰신 것처럼 나이를 앞세워 대우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자기 직무에만 충실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금도 생업 현장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좀스럽게 부하직원을 쪼는 상급 관리자부터, 외제차를 타고 물류센터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까지, 이 세상에는 다양한 노동형태가 있다. 그리고 노동 자체를 안 하고, 혹은 안 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 건, 그냥 그들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면 그뿐이다. 나도 내가 원하는 노동의 형태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하며, 내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누가 뭐라든, " Who cares?"!
[작가의 변]
이 글은 한 달전에 이미 완성되었다. 그런데, 8화 대치동 상담실장의 세계 가 갑자기 브런치 메인화면에 걸리면서, 내 브런치북을 구독하신 독자분들이 증가했다. 제일 흥미진진한 두 직장의 이야기는 정말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외람되지만, 나 혼자 간직해야만 한다. 기대를 가지고 구독해주신 독자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