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직업 수집가가 되었는가
이것은 "인생 최고의 노동-포장 알바"를 하기 이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직전,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방법은 마스크뿐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품귀현상이 생긴 그 시점의 일이다.
당시 나는, 완전한 전업주부의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계획적인 일상을 벗어나,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오늘은 뭐 하고 놀까?'부터 궁리하고, 운동, 악기, 브런치 등등,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시작되었고, 짧은 황금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미디어에서는 마스크 품절 사태에 대해 연일 외쳐대고 정부에서는 매일 인당 국내 생산의 마스크 5개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나는 이른 아침, 약국 앞에서 줄을 서면서, 불현듯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마스크는 우리나라에서 소화하기도 바쁘지만, 중국의 공장은 메이드인차이나건 말건 어쨌든 마스크를 무한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핸디캡인 메이드인차이나를 떼어내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마스크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었다.
'중국 마스크 공장과 중국 마스크라도 필요로 하는 수요처를 서로 연결해 주면 그것이 무역 아닐까?'
우리는 남편 회사 사정으로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5년 동안 상해에서 살았었다. 비록 코로나 시점에서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중국어가 가능했던 나는 여차저차 남편의 중국인 직원을 포함, 현지 파트너들과 같이 친분을 쌓았었다. 가족끼리 만나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기도 했다. 나는 뜬금없이 벼락부자가 될 것 같은 기대감에 부풀어 남편에게 내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남편은 내 예상과 달리, 코웃음을 치며 자고로 무역이란,,,,,으로 시작되는 긴 잔소리를 시전했다. 남편의 현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마스크 생산 공장과 연결은 가능하지만, 마스크 수요처를 무작정 알아내는 것은 바닷가 모래 속 진주를 찾는 거나 같은 거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 메이드인차이나는 찬밥이라는 것도 덧붙였다.
사업이 뭐 별 건가, 좌충우돌하면서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열매가 생기기도 하는 거지, 무역도 전문가의 세계라고 내게 벽을 치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내게는 더 이상 무엇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로움과 추진력이 있어,라고 확신하며 나는 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수요처 하나만 물어오자. 그럼 남편도 생각이 달라지겠지.'
호기롭게 노트북을 열었지만, 실상은 어디서 어떻게 수요처를 알아낼 수 있는지 몰랐다. 펜을 쥐고 흰 종이에 폭풍같이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마스크가 필요하다->중국산 마스크라도 필요하다->해당 국가에는 마스크제조공장이 없거나 부족하다->코로나 이전에는 마스크를 어떤 업체가 조달했는가->마스크는 의약품인가, 의약외품인가->마스크는 어떤 인증을 받아야 할까->마스크를 수입하는 업체는 어떤 제품도 같이 취급할까->구글에서 키워드를 어떻게 조합해야 해당 업체를 검색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생각의 흐름이었고, 나는 제조공장이 부족하면서 중국산에 의존하는 곳을 유럽으로 좁혔다. 제일 먼저 구글에서 유럽의 각국 언어를 하나씩 지정했다. 먼저 프랑스어로 설정하고 마스크, 의약외품, 의료기기, 수입, 보건의료, 코로나 등등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조합해서 관련 업체를 검색했다. 하루 종일 검색하다 보면 자신들의 회사에 대해 잘 설명해 놓은 홈페이지서부터, 매우 불친절한 느낌의 홈페이지까지 여러 정보가 나왔다. 나는 컨택, 고객의 소리 등등의 메뉴를 찾아냈고, 거기에 무조건 메일을 보냈다. 물론 한국어로 먼저 구상하고, 프랑스어로 변환한 뒤, 메일을 썼다.
'우리는 한국에서 중국전문 수출입을 하는 업체야.(아직은 실체가 없지만) 너네 마스크 필요하지?(아마 급할걸?) 우리가 각종 인증을 받은 마스크를 생산하는 중국업체를 알아.(아직은 못 찾았지만, 너네 나라 수입에 문제없는 인증을 갖춘 업체야) 중국은 생산라인이 많아서 충분히 수출할 여력이 있어.(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하지만) 관심 있으면 이 메일로 회신 줘.(꼭 주길 바라. 난 나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거든)'
하루는 프랑스, 그다음 날은 이탈리아, 그다음은 스페인, 이런 식으로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업체를 검색하고, 연락처를 알아낸 뒤, 메일을 보냈다. 유럽과는 시차가 있으므로, 아침에 메일함을 열면 다른 나라의 생소한 언어로 온 메일이 있는지, 스팸메일함까지 매일 뒤졌다. 며칠 동안 컴퓨터에만 매달렸는데, 아무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저녁, 12시가 넘은 시간까지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언어의 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구글 번역을 해 보니, 스페인의 한 업체에서 메일을 보냈고, 내가 잘 모르는 무역용어가 가득했다. MOQ, MPQ, L/C, FOB 등등, 생소한 단어들을 검색해 가며 메일을 해석한 결과는, 내가 정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마스크를 공급할 수 있느냐는 확인 메일이었다. 나는 한밤에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고, 자는 남편을 깨웠다. 잠이 덜 깬 남편을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메일을 쓰라고 강요했다. 우리는 약 30분 정도, 메일을 주고받았고, 우리에게 처음 메일을 보낸 사람은 자세한 내용을 확인한 후, 의사결정권을 지닌 상급자에게 우리를 넘겼다. 우리는 상급자와 메일을 주고받았고, 가격 문제에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나는 매우 실망해서 남편한테, 가격을 낮춰서라도 성사되게 하지 그랬냐며 힐난했지만, 남편은 정색하고 이익이 남아야 거래를 하지 않겠냐며 기본적인 장사꾼의 마인드를 읊었다. 그렇게 하룻밤의 꿈으로 끝나나 했더니, 그다음 날에는 이탈리아에서 메일이 왔다. 이번에는 좀 더 침착하게 대응해서 차분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와의 거래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중국인 친구가 인증자격을 갖춘 마스크 업체를 소개해주었고, 이탈리아 업체에 중국 공장의 각종 인증 서류를 보낼 수 있었다.
나 혼자서만 이 일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후반 과정은 남편의 도움이 있었고, 나의 역할은 수요처 찾은 것 하나였지만, 이 일은 내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코로나 기간 동안 잠시에 불과했지만, 나는 어엿한 무역회사 대표가 되었고, 이탈리아에 중국산 마스크를 수출했으며, 이 일로 이익을 챙겼고, 남편은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조차도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하면 된다'라는 간단한 원리를 깨쳤다. 물론 우연의 연속이었고, 행운이 따라주었지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증명해 냈다. 한정된 정보와 인맥으로만 움직였던 과거 세계와 달리, 현대 사회는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가지고 무작정 부딪히다 보면,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는 성공이든, 실패든, 그 무엇이 생긴다. 이때의 경험은 일간지에 무작정 칼럼 투고하기, 출판사에 무작정 원고 투고하기 등으로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쨌거나, 살아오면서 좌충우돌 많은 경험들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는 이것들이 저절로 구슬 꿰듯이 엮어져, 나중에는 하나의 소중한 완성품이 된다. 내가 그 증명이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일들, 생각들, 어느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 그것들은 어떻게든 구슬로 엮어져, 당신 미래에 짜잔! 하고 나타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일들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나라는 보잘것 없는 사람이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 사람과 원대한 무역에 대해 메일을 주고받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