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보물, 나의 고양이 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읽고

by 책식주희


어릴 때 창가에서 달을 올려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보름달이었던 것 같은데 동그랗고 예뻐서 저게 내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달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면 어떨까. 그런데 금방 나는 그 생각을 접었다. 아마도 달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 것 같아서. 한 100위, 아니 10,000위쯤 정도 안에는 들 수 있을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달을 올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생각이 꼬리를 물어, 달 외에 다른 것들,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는데... 순간 무서워졌다. 어쩌면 나는 그 무엇도 갖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떤 물건도, 어떤 존재도 내가 ‘가장’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강한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유욕이 강한 편이었다. 많은 물건을 갖지 못해서였을까, 함께 갖는 것보다 적더라도 내 것을 갖는 게 좋았다. 나만의 것이 그리 많지 않은 환경에서 커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그리 풍족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은 내내 남동생과의 경쟁으로 치열했다. 뭐든 내 것과 네 것으로 나누느라 바빴다. 어른들께 먼저 드려야하고, 누나니까 양보해야 하고, 동생이니까 봐줘야하는 다양한 룰 속에서 얼마 되지 않는 ‘나만의 것’은 더없이 소중했다.


세상에 소중한 것들, 중요한 가치들, 보물들은 얼마든지 있다. 돈, 명예, 권력, 아름다움, 도덕, 선, 자연, 가족, 친구... 그런데 그 많은 것들 중에 ‘나만의 것’은 무엇이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고 내 것이 되었을 때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내 고양이 ‘탐’이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또한 그다. 어디선가 들었던, 반려동물에게는 그의 반려인이 유일무이한 우주라는 표현이 잊히지 않는다. 탐의 우주는 온전히 나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실에 묵직한 책임감과 동시에 애틋한 충족감을 느낀다. 탐의 존재만큼 내 삶이 무거워졌다. 딱히 꿈도 없고 그냥저냥 어떻게든 살면 되겠지 싶었던 하루하루에 의미가 부여된다. 탐이 밥값 벌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하러가곤 한다. 나는 부모님한테 얹혀살아도 내 고양이는 내가 부양해야지. 야근도 할만하다. 얼마 되진 않지만 야근수당 모아서 탐이 약값 해야지. 처음 탐일 데려오고 몇 년 간은 종종 탐이 다치거나 없어져서 찾아다니는 꿈을 꾸곤 했다. 무의식 속에서도 잃어버릴까봐 두려울 만큼 소중하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에 나오는 보물의 주인, 플린트 선장도 그랬을까. 보물의 위치를 써놓은 지도가 없어질까 봐 꿈에서도 무서웠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보물지도의 존재를 해적들이 다 알고 있는 걸 보면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기지도 않았고, 그렇게 보물이 있음에도 더 많은 보물을 위해 계속해서 해적질을 하다가 보물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죽었다. 보물 자체보다는 보물지도를 갖고 있다는 것으로 해적들에게 숭배 받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해적질 자체에서 만족감을 얻었던 게 아닐까. 플린트 선장의 보물은 그러한 명예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독서모임에서 자신의 보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봐도 누구도 물질적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 다이어리에 담긴 추억들, 성장하고 성취해나가는 자기 자신, 가족들. 황금보화를 가져본 적 없어도 물질적인 것보다 소중한 것은 따로 있다는 걸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탐인 그냥 고양이가 아니다. 태어난 지 3개월 때부터 키운 내 새끼고, 밥 한 끼 약 한 숟가락도 내 손을 거쳐야 한다. 탐은 퇴근하고 들어오는 나를 큰 목소리로 반긴다. 단 하룻밤이라도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온종일 근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으로부터도 받아보지 못한 환영이다. 같이 자진 않지만, 내가 잠에서 깨면 어떻게 알았는지 침대 밑이나 캣타워 위에서 침대로 온다. 톡톡톡 발소리와 함께 가볍게 침대로 뛰어올라와 아침인사를 나눈다. 묵직한 무게로 내 배에 올라가거나 허벅지에 기대거나 팔을 베고 눕는다. 그 무게감이, 사람보다 조금 높은 체온이 내 삶을 채운다.


탐, 나의 고양이, 나의 보물. 탐과 함께한 모든 시간들이, 추억들이 모두 내게 보물이고 보물지도다. 탐이 내 곁에 없을 어느 미래가 오더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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