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꾼을 위한 변명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을 읽고

by 책식주희


안톤 체호프의 희곡 <벚꽃동산>은 코미디라는 작가의 설명과는 다르게 코믹하지는 않다. 벚꽃동산의 주인 류보비가 돌아오는 것으로 극이 시작되는데, 집이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음에도 파티를 열고 돈을 빌려주고 씀씀이를 줄이지 못한다. 과거 이 집안 농노의 자식인 로빠힌이 벚꽃동산을 별장부지로 내놓으라고 해결책을 알려주지만, 류보비는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결국 경매에 오른 벚꽃동산은 로빠힌의 소유가 된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서로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내내 답답해하며 읽었다. 작가의 유머감각에는 이것이 코미디였을까.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나는 체호프가 의도했던 것보다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체호프가 원했던 거리 감각은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해진다. 당장 벚꽃동산이 넘어가더라도 파리에 갈 수 있고, 생존에 문제가 되지 않는 귀족 가문을 걱정하게 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코미디인 걸까.


내가 작가의 의도보다 가까이 들여다보며 마음을 준 캐릭터는 벚꽃동산의 전주인인 류보비도 아니고 나중에 주인이 되는 로빠힌도 아니다. 류보비의 수양딸 바랴다.


바랴는 이 집안의 실생활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다. 빚 걱정하랴 철없는 엄마에게 좋은 딸 노릇하랴 입만 산 만년 대학생에게 정신 팔린 동생 단속하랴 바랴는 늘 바쁘다. 부족한 돈으로 집을 꾸려가느라 하인들에게 맛없는 밥을 준다는 불만을 받는 것도, 파티에 부른 악단에 지불할 돈 걱정을 하는 것도 바랴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서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 남자(로빠힌)가 청혼해주길 기대해야 하는 신세인 여성.

나는 왜 이 여성에게 마음이 쓰이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벚꽃동산>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이는 바랴뿐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음이 쓰이나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는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랴를 잔소리꾼이나 참견쟁이로 폄하하기엔 그녀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런 일을 시킨 이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 수양딸이라는 위치가, 진짜 그 집안사람이 아니고 귀족이 아닌 그녀의 위치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자 나서다 보니 어느새 많은 일들을 하게 되었을지도. 진심으로 걱정해서 잔소리를 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위치가 불안해질까 봐 재산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랬는지 작가 체호프만이 알 것이다.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바랴의 최선에는 정당한 인정이 필요하다.


바랴, 보따리에서 우산을 빼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누굴 때리려고 치켜드는 듯하다. 로빠힌, 그 모습을 보고 놀란다.

바라: 왜 그러시죠……. 그럴 생각을 한 건 아니에요.

(안톤 체호프, <벚꽃동산>, 열린책들, 259쪽)


로빠힌은 바랴가 자신을 때릴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을 보면 작가 체호프도 그것을 의도했다. 로빠힌이 바랴에게 맞을 만하다고, 혹은 바랴가 로빠힌을 때리고 싶을 만하다고 여긴 게 아닐까. 로빠힌이 벚꽃동산을 사서 그들을 쫓아내는 입장이 되어서 일까, 아니면 주변의 부추김에 청혼할 것처럼 굴다가 청혼하지 않아서였을까. 차라리 한 대 쳐보기라도 했으면 시원했을 텐데 아쉽다.


내가 왜 이리 바랴에게 마음을 쓰이는가 다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잔소리꾼이어서 그렇다고 어렵게 인정하게 된다. 관심이 있으면 있을수록 잘 됐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말인데 참견이나 잔소리로 여겨지던 순간들이 있었다. “잔소리 좀 그만해” 잔소리가 아니라 진짜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잔소리’로 치부되면 순간 할 말을 잃는다. 어쩌면 그런 걱정 어린 말들은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걱정한다고 빚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바랴의 잔소리를 듣고 실제로 행동을 고치는 이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랴의 걱정 어린 행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라고 믿고 싶다.


바랴는 어디서든 잘 살 것이다. 차츰 남들에게 관심을 줄이고 스스로를 잘 챙기는 것을 배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당한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바랴도, 나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청소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