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청소년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청소년기란 무엇인가. 지식백과에서는 청소년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급격한 신체적,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서 인간으로서의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고 더 이상의 성장이 없는 시기’, 그렇다면 계속 성장하기만 한다면 청소년인 것이 아닌가. 어물쩍 그런 이야기로 과거를 덮고 싶은 마음 반, 낱낱이 드러내고 싶은 마음 반. 이것은 반반 무마니.
‘급격한 신체적 변화’하면 생각나는 건 역시 나의 큰 키겠다. 날 때부터 좀 길쭉하긴 했다. 불그스레한 기운이 남아있는 아기 때 사진을 보면 팔 다리가 길쭉하고 축 처진 것이 귀엽다기보다는 좀 문어 같다. 어린 남동생이 더 귀엽게 생겨서 나는 아기 때 사진을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얘가 딸이에요?“ ”아뇨, 얘는 아들이고 쟤가 딸이에요." 그런 소릴 들으면서 커서 그런가 나는 모든 아기들을 보면 그냥 ‘귀엽다’고 말한다. 귀엽지 않아도 ‘귀엽다’,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도 ‘귀엽다’. 진심은 안 담겨있을지언정 절대 실패하지 않는 대답이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늘 신기하고 때로 부러웠는데, 객관적이라고 포장했지만 어릴 때부터 스스로에게 너무 비판적이었지 않았나 싶다.
키가 훌쩍 큰 어떤 시기가 있지는 않았다. 분명히 초2학년 때까지만 해도 키순으로 줄 서면 앞쪽이었던 거 같은데 차츰 뒤로 가더니 5,6학년 때는 자연스럽게 맨 뒤가 내 몫이었다. 기록을 살펴보면 꾸준히 계속 크는 걸 확인할 수 있다. 4학년이면 11살인가, 10살인가? 아무튼 그때 제일 큰 폭으로 4센티 정도 컸다. 그 후부터 꾸준히 1년에 2~3센티씩 큰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1센티 모자란 170센티라 이제 ‘진짜’ 그만 크는 줄 알았는데 졸업할 때는 177이 됐으니까. 뭐 먹고 그렇게 컸느냐고 다들 묻는데 그냥 가리는 거 없이 먹성 좋게 잘 먹고 늘 졸려하면서 잘 잤다. 키 크면 다 모델이나 운동선수하지 아깝다고 하는데 키 크다고 다 모델하고 운동선수 하는 거 아니라는 걸 내가 몸소 보여줬다. 말이 쉽지 다 끼고 재능이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데 더 재능이 있었다. 무난하고 안전한 재능. 피아노도 쳐보고 미술도 하면서 장래희망에 피아니스트도 써보고 화가도 써보고 해봤는데, 선생님들은 냉정했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할 정도로 큰 의지나 애정이 있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잘한다’ 소리 듣는 공부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 건 취미로 즐기지 뭐.
근데 안전한 도피처였던 공부마저도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약간의 잔머리가 있어서 방법을 남들보다 조금 잘 찾았을 뿐, 하면 딱 그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수준이라 진짜 머리가 좋거나 진짜 성실함에 재능 있는 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교내 과학과목별로 수상을 했었는데 2등상, 3등상을 타서 집에 와서 자랑을 했더니 고모가 그랬다. 이렇게 여러 개 받는 것보다 하나 1등 딱 받는 게 더 좋은 거라고. 가차 없이 비판적인 것은 집안 내력인가 보다. 칭찬이나 잔뜩 해주지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사실이었다.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과목도 1등은 하지 못했다. 어떤 과목도 ‘진짜’ 좋아하진 않았고 어떤 과목도 ‘진심으로’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으니까. ‘적당한’ 점수 받을 만큼만 ‘적당히’ 잘한다 소리 들을 만큼 ‘적당히’ 공부했다. 진짜 치열하게 우직하게 공부하는 애들이 1등을 했고 나는 그런 애들을 이길 수 없었다.
고2때였나 필수적인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이 돌아왔다. 애초에 나는 누가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뭐라도 얘기해야 돌아갈 수 있으니 얘기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데 진짜 잘하는 애들한테는 안 되는 게 속상하다. 나는 헛고생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계속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다.’ 지금 와서 보면 적당히 공부하는 주제에 배부른 고민이었던 거 같은데 그때 담임이 그런 말을 했다.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1등이든 1등급이든 걔들은 그냥 네 주변의 사람들일 뿐이야. 너는 너의 우주를 살면 돼” 아, 인생의 주옥같은 말을 10대 때 들었는데 그때는 그 말이 어찌나 허황되게 들리던지.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가 주인공인 것처럼 살겠지, 근데 나는 내가 1등급인 주인공이 되고 싶다고!’ 그러고 싶었으면 더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다고, 하려고만 하면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그때는 몰랐고 이제는 안다.
그렇다, 이제는 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그리고 나는 여전히 적당주의로 살고 있다. 1등급인 주인공은 여전히 아니지만,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만족하는 그런 주인공이다. 성장해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적당히 나름대로 살아가는 주인공도 있는 거다. 그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