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떠올리다가 문득 누구에게나 그런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인 열정과 의욕으로 시도했다가 내팽개치고 외면하고 나 몰라라 하는 것들. 떠올리면 죄책감이 들기도 하지만 곧 또 다른 관심사가 생겨 이전의 것은 쉽게 잊는다. 읽겠다고 사놓고 쌓아놓은 책들, 직접 만들어보겠다며 산 DIY키트, 공부해보겠다고 산 외국어 학습지, 쓰겠다고 샀다가 뭉텅이로 발견되곤 하는 스티커들, 아낀답시고 서랍에 넣어두곤 잊어버린 수많은 나의 잡동사니 보물들, 보물이었던 것들. 그것들이 ‘괴물’처럼 팔다리가 있어 움직일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다.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만들어놓고 무책임하게 외면하여 그를 타락시키듯이 나는 어쩌면 쓸모가 있었을 온갖 잡동사니들을 끌어 모아 쓰레기로 만든다. 자본주의 시장 속 소비자랍시고 순간의 욕망에 휘둘려 지구를 쓰레기 더미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빅터의 무책임한 행동에 진저리가 나고 그가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자기혐오와 같은 것이 아닐까. 자신의 지식을 책임감 없이 실행해놓고 도망치고, 외면하고,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려고 하는 빅터의 모습에서 인간의 나약함, 나의 나약함을 본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물건들, 쓰레기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빅터는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 모두를 잃고 나서야 괴물을 자기 손으로 없애겠다는 의지를 갖고 실행에 나선다. 우리는 무엇을 더 잃어야 정신을 차리고 실행에 나설까.
「인간의 어제는 결코 내일과 같지 않으니
변한다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으리!」
(P.B.셸리의 시 무상Mutability 마지막 부분, <프랑켄슈타인>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