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를 읽고 늪에 빠져버리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by 책식주희

조지 오웰이 그린 <1984> 디스토피아 세계가 무서운 점은 정말로 이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권력을 욕망하면서도 다른 한편 통제에 쉽게 순응하는, 상반되면서도 공통적인 인간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있다. 인간은 참 재밌어.


<1984> 에서 거론한 많은 통제법, 정신조작법들 중에서도 이중 사고(double think)개념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부정확해진다거나 내 위주로 편집되어 기억난다거나 했던 경험들이 이 '이중사고'에 해당하는 것 같다. 내 잘못으로 싸웠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보니 싸웠던 이유보다 내 감정을 상하게 했던 상대의 말이 더 또렷이 기억이 난다거나, 그래서 내가 화를 낸 게 정당한 것 같이 느껴지는 것. 이걸 우리는 '자기 합리화'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런데 조지 오웰은 '이중 사고'라고 불렀던 게 아닐까.


'빅 브라더'는 통제를 위해, 더 나아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중사고를 가르쳤다. <1984> 세계의 윈스턴이 살아남기 위해 이중사고를 연습했던 것처럼, '나'는 나 자신을 방어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무의식 중에 이중사고를 했을 것이다.


그의 사고는 이중 사고의 미로 같은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는 것, 완전한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교묘하게 날조된 거짓말을 말하는 것, 말살된 두 개의 의견을 동시에 가지고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 그 둘 다를 믿는 것, 논리를 사용해 논리에 대항하는 것, 도덕을 주장하면서 도덕을 거부하는 것,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고 믿으면서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믿는 것, 잊어버릴 필요가 있는 것은 죄다 잊어버리고 필요할 땐 언제든지 다시 기억 속으로 끌어들였다가 다시 재빨리 잊어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 자체에 똑같은 과정을 적용시키는 것, 이런 것들은 이해하기 지극히 불가능한 것들이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자신이 행한 최면 행위를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이중 사고를 이해하는 데조차도 이중 사고를 동원해야 한다.

(조지 오웰, <1984>, 열린책들, 박경서옮김, 제1부 3, 13%)


심리학적인 '방어기작'으로 '자기 합리화'는 꽤 일상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계속 이중 사고로 기억을 조작하고 자기 합리화를 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면 되는 걸까.


윈스턴은 이중 사고, 언론 조작의 증거로 자신의 일기를 남기고자 했다. 기록을 통한 증명을 시도했던 것이다. 나도 꽤 꾸준히 일기를 쓴다. 윈스턴의 일기 같은 증명이나 기록의 목적은 아닌 것 같다.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들은 과거의 일기를 다시 읽어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던데, 나는 내 기록을 다시 읽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일기에 좋았던 기록보다는 복잡한 불안과 자잘한 분노나 우울 들이 주로 적혀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심란하게 만드는 것들을 마구잡이 적어놓고 좀 객관적이 될 수 있는 용도로 일기를 쓴다.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일기를 쓰는 셈이다.

나중에 들여다봤을 때 그 감정이 다시 선명하게 느껴질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이렇게 얕은 물에서 빠져죽을 듯이 힘들어했구나 신기할 때도 있고, 여전히 그 고만고만한 고민을 쳇바퀴 돌듯이 계속하고 있어서 스스로가 한심할 때도 있다. 이래서 의식적으로 좋았던 것들을 기록하는 긍정일기나 감사일기를 쓰고, 기분 좋은 가능성을 늘어놓는 미래일기를 쓰라고 하는 건가보다! 하고 깨달은 적이 있다. 깨달음과는 달리 실천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는데 실천하지 않는다. 이 또한 이중 사고는 아닐까. 효과가 있을 것 같지만, 딱히 내가 실천할 것 같지 않고, 그래서 안하면서 '에이, 효과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이중-이중-사고(double-double-think)인가.


윈스턴이 살기 위해 '둘 더하기 둘이 다섯'이라고 믿는다고 해서, 믿기 위해 애쓰다가 정말로 믿게 되어버린다고 해서 뭐가 문제일까. 그는 자신을 위해 그 모든 과정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할 수 있다.(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 이중 사고의 늪에 빠져버린다. 누가 구해줄 수 있을까.


누구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랑켄슈타인을 읽은 후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