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반성의 시간

<동물농장>을 다시 읽고

by 책식주희


무엇을 읽든, 그 안에서 자신 혹은 자신과 유사한 것을 찾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흔히들 독서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간접경험해볼 수 있는 창구라고 하는데, 다른 이의 눈으로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놓지 못하니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하지만 독서가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의 모습을 등장인물에 투영하면서 스스로를 제3자의 시각으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이상과 권력욕에 대한 비판을 담은 ‘동물농장’을 읽고서 자기반성의 시간이라니 정치적인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나를 투영할 캐릭터를 찾아 이어진 수많은 자기반성 중 하나다.

‘동물농장’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나온다. 각각 성격도 다르고 풍자하는 대상도 다르다. 내게도 양들처럼 선전에 휘둘려 조종당하는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은 선동가 스퀼러처럼 세 치 혀로 다른 이들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한 동물은 양도 돼지도 아닌 당나귀였다.

농장에서 나이가 제일 많았고 성미도 제일 고약한 당나귀 벤저민은 말이 별로 없지만 어쩌다 입이라도 열게 되며 냉소적인 말만 하곤 한다. 자기가 맡은 일은 하지만 그 외에 다른 일을 자발적으로 하려고 하진 않는다. 돼지들끼리 ‘풍차 건설’을 두고 싸울 때도 벤저민은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이 된다. 「그는 식량이 더욱 풍부해지리라는 것도, 풍차가 일손을 덜어 주리라는 것도 믿지 않았다. 풍차가 있든 없든 삶은 항상 예전과 마찬가지로 고생스러울 것」(33%)이라고 말하는 벤저민에게서 나를 본다. 벤저민의 특성을 나타내는 설명이 ‘말이 별로 없다’는 것 빼고 하나같이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사람,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릴 적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때 본 만화 속에서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똑똑해 보여서 좋았고, 자조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은 우울하지만 매력적이었다. 그런 캐릭터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실제 성향과 이런 지향의 조합이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성과 감성, 현실과 이상,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 속에서 냉철하게 객관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독서모임에서 하이디님의 “그런 스스로가 마음에 드세요?”라는 질문에 확고하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나 멋있어보였지 정작 어슴푸레 그런 사람이 되고 보니 절대 좋은 이상이 아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구니 주변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고 그런 나를 비웃고 있자니 스스로 땅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비판적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세상은 주관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 호의적이고 열려있다. 그들에 의해 세상이 돌아간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벤저민 같은 성향을 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벤저민 영감을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지식인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동물 혁명 때는 기꺼이 동물들과 함께 싸웠고, 복서의 우직함을 남몰래 존경한다. 복서가 도축업 마차에 탈 때는 먼저 나서서 읽기도 한다. 7계명이 바뀌었다고 굳이 알려주지 않은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 동물들에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벤저민도 나도 단편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런 면이 있으면 저런 면도 있는 것이지.


살면서 조금씩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 되어간다. 여전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는 사회성 스킬이 나날이 탄탄해지고 있다. 비판적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비판적으로 충분히 분석하였으면 단점을 상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여 실천하고 행동해야 한다. 너무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일단 덤벼들어 체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배우고 있다.


「단지 벤저민 영감만이 긴 자기 생애의 모든 일들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 농장의 사정은 옛날보다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며, 배고픔과 고난과 실망은 삶의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열린책들, 70%)


벤저민은 철학자다. 삶은 고통이라고 쇼펜하우어도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누구도 인생이 달콤하고 편안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 벤저민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그래서 자신이 농장과 동물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목표가 있었다면 동물농장은 또 다른 이야기로 흘러갔을 것이다. 벤저민 또한 돼지들처럼 인간들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클로버와 함께 평화롭게 동물들을 이상향으로 이끌었을 지도 모른다. 그 모든 가능성들은 행동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행동하지 않으면 모른다. 벤저민 영감에게도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오늘의 자기반성 결론 : 행동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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