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는지 어땠는지 안 중요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스즈키 유이, 2025)를 읽고

by 책식주희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괴테의 저작이나 사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읽어본 것은 처음이다. 단순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작가로 기억하는 그가 이렇게 여러 저작이 있고 많은 명언이 있고 학자(라고 쓰고 '덕후'라고 읽고싶은)들이 따르는 사람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보통 유명한 작가라고 하면 누구를 떠올리는지 생각해보니 프리드리히 니체, 프란츠 카프카나 알베르 카뮈, 조지 오웰ㅡ 19~20세기 사람들이다. 1749년생 괴테를 더 멀게만 느껴지는 건 내 탓만은 아니다.(실제로도 머니까)

<파우스트>를 학생 때 읽었는데 대략적인 줄거리 외에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파우스트를 각자의 스타일대로 읽으며 '재밌더라'라는 평을 하는 소설 속 인물들에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멈추어라, 너는 참으로 아름답다."라는 문장이다. 꽤 두꺼운 장정의 <파우스트>를 지루해 괴로워하면서도 의무감과 허세로 읽어내면서(그것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견뎌냈다고 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저 문장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종이에 필사했던 것이 기억에 남은 것이다. 파우스트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새삼 궁금해 옛 블로그에 적어둔 문장을 다시 찾아보니 앞뒤 맥락이 또 생경해서 당황했다. (<파우스트> 다시 읽어야겠다.)

모어로 된 문장이 아니고서야 원문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어떤 순간에 인용하느냐에 따라 의미하는 바도 원문과 달라질 수 있다. 거기다 심지어 기억에 의존하여 전달하는 명언 인용은 출처에 있어서 불분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는 것, 인정받는 명언이 되는 것, 그 순간의 의미를 담는 것은 원문의 힘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똑같군. 여러 가지 상태가 항상 반복되지.(...)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우리는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형식이나 표현으로 되풀이할 뿐이야."(116p.)

모든 것이 말해진 세상에서 무엇을 쓰건 그것이 표절이 아닐 수 있을까. 지금껏 읽고 본 수많은 것들이 나의 생각과 말을 구성할텐데, 어떤 말의 어느 부분까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재인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129p.) 표절이 될까 두려워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내가 출처를 모르겠다며 한 말에 '체화'된 것 아니냐면서 치켜세워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나도 누구의 말이라며 거창하게 인용하고 싶었는데 그런 암기력은 안 좋은 탓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어디선가 읽은 것이라고 했을 뿐이라 속으로 부끄러웠다. 그런가? 체화되어버리면 '누구누구의 말'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것일까.

"실생활에서 따오든 책에서 따오든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어. 제대로 사용했는지 아닌지, 그것만이 중요하지!"(117p.)

문장에 인용 문장을 집어넣는 것은 해당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로 보인다. 위인이나 유명인의 이름 값을 빌려와 오는 것이기도 하고, 개인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례라는 걸 보여주는 예시가 되기도 한다. 위인이나 유명인, 하물며 소설 속 시카리처럼 학자가 말한다고 다 옳은 말은 아닐텐데 우리는 왜 그들의 말에 무게감을 더 주는 걸까.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게 어때?' (209p.)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 것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추구해야 하는 옳은 방향이 아닐까 싶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든지 말하다 말았든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진정으로 그 말이 내 것이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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