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가

가오싱젠 <버스 정류장>(2002, 민음사)를 읽고

by 책식주희

버스가 오지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희곡 <버스 정류장>은 버스를 기다리며 화를 내기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기다림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볼 수 있다.


“기다리는 건 상관없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줄을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건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거지. 만약 당신이 줄을 서서 반생을 혹은 일생을 쓸데없이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건 정말 웃기는 일 아니겠어요?”

“기다리면 어때? 사람이 기다린다는 건 뭔가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지. 만약 바라는 것조차 없다면, 그땐 비참하죠. 저 안경잡이 청년 말을 빌리자면 절망이라는 거지.”

(79~83p. 발췌, <버스 정류장>, 가오싱젠, 민음사, 2002)


프란츠 카프카의 <법(法) 앞에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평생을 기다린 <법 앞에서>의 남성과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카프카는 시골에서 온 남성이 죽을 때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그리지만, 가오싱젠은 시내를 향해 서로 끌어주고 부축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부조리극을 그렸지만 <법 앞에서>가 목적을 이루지 못한 '기다림', '삶' 자체에 과연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내게 남겼다면 <버스 정류장>은 그래도 연대하면 된다는 희망을 준다. 버스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을 포기하고 걸어서라도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무슨 삶이 이러냐고 투덜거리기도 하고 소송을 걸겠다면서 화도 내고 말다툼도 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인연들이 되어 서로 부축하고 짐을 들어주면서 같은 방향을 향해 가는 모습이 가오싱젠이 말하고자 한 가능성, 연대의 희망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모르던 타인들이 모여서 같은 상황에 투덜거리고 분노하다가 연대할 수 있는 기회의 장! 오히려 더 많은 '버스 정류장'들에서 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에 불안과 우울증이 만연한 것은 사회가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단절되어 그렇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읽었다.(<벌거벗은 정신력>, 요한 하리)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라고 지적하는 모습조차 이제는 보기 드물어진 세상 속에서 모르는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게 얼마나 판타지 같은 것인가 싶다가도 쓰러진 신문 배달 오토바이를 바로 세우며 흩어진 신문들을 함께 줍던 사람들 속에서 새삼 타인의 따스함과 여럿이 함께 하는 행동의 큰 힘에 감동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더 연대해야 한다고 어쩌면 가오싱젠도 그렇게 희곡으로, 연극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2025년 12월 3일 밤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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