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 박찬일 옮김, 민음사)를 읽고
자신의 신념과 감정을 위해 기꺼이 온 몸을 던지는 ‘니나’와 삶은 곧 사랑이라는 듯이 니나를 향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슈타인’. 이 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속에서 내 마음이 가는 사람은 이 둘에 비해 자신의 인생이 왜소하다고 느끼는, 니나의 언니 ‘마르그레트’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처럼 다른 이의 삶을 동경하고 부러워한 적이 없는 사람, 어디 있겠는가. 살아보지 못했기에 좋은 면만 보이기에 더 쉽게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학생 때는 공부 비슷하게 한 것 같은데 1등하는 친구나 화목한 가족을 가진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좋은 대학 다니고 워홀이나 유학을 다녀오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영어도 잘하고,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커서는 주머니사정 여유로운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었던가.
하지만 부러워만 하고 실제로 무엇을 하려고 노력했던가.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고,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지도 않았다’고 니나가 가하는 일침(383p.)은 꼭 내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 진짜 유학이나 여행이 가고 싶었다면 알바라도 해서 떠났어야 했다. 공부도, 돈도 마찬가지다. 나는 니나나 슈타인만큼 강렬한 삶의 동기가 없었다, 마르그레트처럼.
적당히 안락하고 평화로운 현실 속에 안주하여 ‘약간은 게으르고, 무심하게, 자신과 타협하고, 특별히 마음 쏟는 일 없이’(364p.) 그렇게 살았으면서 모험을 통해 경험을 얻은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것은 기만이 아닐까.
“너는 많은 것을 지부하고 많은 것을 얻고, 나는 거의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거의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공평하지 않아?”(230p.)
그렇지만, 수많은 마르그레트를 대변하여 이런 삶도 괜찮다고 항변하고 싶어진다. 적당히 평화롭고 안락하게 평탄한 삶을 살아가며 일상을 유지하는 ‘마르그레트들’이 없다면 세상이 똑바로 돌아가겠느냐고. 하찮아 보이고 뻔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흔한 나사, 뻔한 부품일지언정 하나둘 빠지고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변명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떠한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내 일상을 긍정하고 살아가겠다는데. 살아가는 데에 누군가의 인정이나 부러움이 필요하지 않다. 나이 들수록 누군가를 부러워하기보다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더 관심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마르그레트의 삶을 그린 소설이 읽고 싶다. 히틀러 정권을 피해 해외로 나가고 기자를 하고, 남편과 둘이서 아이 없이 개들과 살며, 여동생을 걱정하면서도 부러워하는 여성의 삶. 쓰고 보니 그도 평범하지는 않다. 꼭 목숨이나 인생을 걸만큼 커다란 일을 해야만 하고 모험이고 의미 있는 삶일까. 어떤 삶이어도 소설로 그려내면 그 안의 빛과 어둠, 굴곡이 있어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 삶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