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여유가 필요해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를 읽고
며칠 전, 집으로 가는 길 방향을 무심코 올려다보는데 뒷산 중턱에 처음 보는 건물이 있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보이는 뒷산이었는데, 며칠 만에 건물이 지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된 일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한동안 일상에 치여 집 가는 걸음을 재촉하기 바빠서 뒷산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여유를 갖고 지켜보았더라면 건물을 짓느라 뒷산의 나무들을 베는 것이나 건물 뼈대를 세우고 한층 한층 올리는 것을 보았을 테지, 갑자기 생긴 건물에 놀라지는 않았을 테지.
내가 산 중턱의 건물이 지어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처럼 시라노는 그(가 쓴 편지)를 향한 록산의 사랑이 생겨나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크리스티앙의 외모로 시작되었으나 그의 외모보다 편지를 쓴 영혼을 사랑하게 된 록산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시라노는 준비했던 자신의 고백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록산의 사랑을 이뤄주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록산의 행복이나 인생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못한다. 오랫동안 몰래 품어온 자신의 사랑에 파묻혀 있었고,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편지를 대필한다는 죄책감으로 록산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외모로 시작하였지만 시와 편지에 마음이 움직인 록산이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시라노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록산뿐이 아니다. 록산의 부탁으로 크리스티앙을 돌봐주겠다며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편지를 쓰게 됐으면서, 크리스티앙의 마음보다는 본인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에 심취하고 만다.
크리스티앙: 그래요, 전 온전히 저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어요. 아니면 아예 사랑받지 못하거나!
(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제4막 209장, 187쪽, 열린책들)
크리스티앙은 록산이 자신을 온전히 봐주길 원했다. 록산은 외모보다 시를 쓰는 영혼으로 상대를 평가하고자 했다. 큰 코와는 달리 짧은 시야를 가진 시라노는 록산도 크리스티앙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온전한 선택권을 박탈하고 불행하게 만든 셈이다.
크리스티앙이 죽기 직전에 귓가에 속삭여준 시라노의 거짓말은 크리스티앙이 죽었기에 의미가 있었다. 그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면 쉽게 드러났을 얄팍한 거짓이었으니까. 전쟁이 없었다한들 록산이 크리스티앙과 행복할 수 있었을까? 결혼까지 한 두 사람의 곁에 영원히 시라노가 머물며 크리스티앙의 입을 대신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랑을 조작한 거짓은 과연 얼마나 숨길 수 있었을까. 록산은 크리스티앙이 변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사랑한 편지가 대필이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록산: 그래요, 사랑을 말해 줘요.
크리스티앙: 당신을 사랑하오.
록산: 그건 주제죠. 수놓아 보세요. 아름답게.
크리스티앙: 당신을…
록산: 수를 놓아 봐요!
(에드몽 로스탕, <시라노> 제3막 제5장 121쪽, 열린책들)
크리스티앙이 시라노의 도움 없이 사랑을 고백할 때의 록산의 반응을 보라. 전쟁이 그렇게 급박하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시라노의 간섭 없이 크리스티앙과 함께 있는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사랑을 위해 전쟁터를 가로질러 식량을 조달할 방법을 생각해낼 정도로 영리한 록산은 분명 스스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시라노가 아무리 자기 딴에 헌신적인 사랑을 했다 한들 그가 쓴 편지가 아무리 감미로운들 그가 록산과 크리스티앙을 불행하게 만든 원흉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그 자신도 불행하게 만들었다. 총사정신이라는 그의 소신과 싸움실력, 지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사랑에만 매몰되어 큰 그림을 놓쳤다.
무언가에 푹 빠지면 시야가 좁아지곤 한다. 비단 사랑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관심 갖는 것일수록 조금 거리를 두고 찬찬히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랑에도 인생에도 그런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