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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Mar 21. 2024

이제 생일은 그만하기로 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당신 생일이니까 나가서 점심 먹어요.

장소는 당신이 정해요 '

남편의 카톡이다.

'이제 생일은 그만 하려고 합니다.

이제부터는 생일 같은거 안챙기고 쿨하게 살려고 합니다.'

내가 보낸 답이다.

남편은 쇼크를 먹었는지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은  어떤 상황에서도 생일은 챙겨야 되는 집안출신이다. 어떻게 그렇게 반대로 만났는지!

  나는 '생일 그 까이꺼 뭐가 중한디 집안 출신'이다.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그냥 먹지. 뭘 생일까지 참아.'

대충 이런 마인드의 부모님이셨다.

결코 집안 형편이 넉넉해서는 아니었다.

먹고 싶은 갈비는 1년에 한 번이었다.

짜장면 정도는 왠만하면 가능했던 것 같다.

매순간을 소중히 여기셨던 마음 때문이셨다.


부모님은 매일 아침 깨면 그 날이 생일이라고 하셨다.

매일 새로 태어나는 거라고!

 매일이 생일인데 뭘 생일을 챙기냐 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 엄마 아빠는 마음이 잘 맞았다.

한 분이라도 생일에 큰 의미를 뒀다면 집안이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을텐데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부모님의 깨어 있는 마인드 덕분에 매순간을 즐기려 노력하는 삶을 배웠다.

실제로 부모님은 삶으로 매일이 파티가 되는 것을 보여주셨다.


결혼을 하고 생일이 그리도 큰 일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됐다.

시간이 약이었다.

마음으로는 적응을 못해도 몸은 적응을 완료했다.

끝까지 적응하지 못한 것은 내 생일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생일은 챙겼다.

내 생일은 그냥 넘어가 줬으면 하는 바램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형식적인 생일 축하가 싫었다.

부부 싸움을 해도 생일은 해야 하는 남편이었다.

화난 체로 먹고, 화난 체로 돌아왔다.


그냥 넘어 갔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면 남편은 화를 냈다.

한 번도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했다.

거기에 협조하지 않으려는 나에게 화가 날 뿐이었다.

내 생일에 나가서 외식만 하면 체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알고 소화제를 챙기라 할 정도였다.

의무적인 생일 챙기기였었다.

몸도 마음도 굳어진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배짱이 생겼나 보다.

남편이 화를 내든 말든 생일을 안하겠다 통보했다.

남편의 쇼크는 이해할 만하다.

생일 외식은 가장의 의무로 아는 사람이니까!


결혼하고 시어머니의 첫 생일을 맞는 며느리가 마음에 걸린다.

이제 나도 시어머니의 권력이 생겼다.

그 권력을 행사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생일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을 명령하는 권력이다.

시부모님 생신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상을 차려야 했던 내 삶이다.

그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내 며느리는 편하게 해 주고 싶다.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한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내 생일은 그만 챙기기로 했다.


내 생일 챙기기를 거부하는 것에서도 나의 독립은 시작했다.

이제는 원치 않는 일에 더 이상 끌려가지 않으려 한다.

마음에 없는 일인 줄 알면서 분위기 맞추느라 동조하는 삶은 거부하기로 한다.

나의 인생2막은 나로 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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