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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망 Jan 08. 2024

사는 날까지 살아 있고 싶다.

사는 날까지 살아 있고 싶다. 내 생명이 다 하는 그 날까지 내 마음이, 내 정신이 살아 있고 싶다.

지난 밤 , 요양원에서 어르신이 한 분 돌아가셨다. 상태가 안좋으셔서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어젯밤 요양원 밤근무였다. 요양사 선생님들이 교대로 쉬면서 밤새 어르신들을 돌본다. 내가 어르신을

돌보는 시간에 돌아가셨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산소포화도를 재며 상태를 살폈다. 산소포화도가 85로 떨어지고 다른 요양사 선생님들을 깨웠다. 응급 상황이었다.


요양원마다 시스템이 다르다. 또 같은 요양원이라도 층별로 유연하게 운영을 한다. 우리 층은 세 구역으로 나눠서 한 달씩 돌아가며 어르신을 돌본다. 자기가 담당하는 어르신들이 매달 바뀌는 셈이다. 밤근무 때는 담당 구역없이 순서대로 쉬면서 전체 어르신을 함께 돌본다. 이번 달에는 내가 그 어르신을 담당하는 순서가 아니었다. 그래도 밤 근무 때 그 분 기저귀를 갈다가 허리를 다쳤던 인연이 있다. 허리를 삐끗하고는 2주를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다.


결국 그 어르신은 한 시간 후에 숨을 거두셨다.  방금까지 산소포화도를 재느라 만졌던 그 손이 생명을 다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호흡에 숨을 거두시는 모습에 삶의 허망함을 다시 느낀다. 다른 방에는 돌아가신 어르신의 아내가 있다. 그 새벽 남편은 이 땅의 삶을 마감했다. 여전히 그 아내는 밤새 소리를 치고, 기저귀를 다 풀어헤치고 있었다. 선배 요양보호사가 돌아가신 어르신을 수습했다. 그 와중에도 그 아내는 침대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을 쳤다. 밥을 해야 되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표현으로 웃픈 상황이었다.


요양원 근무 4개월차다. 벌써 세 분의 어르신을 보내드렸다. 요양원이라는 곳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곳이다. 하지만 어르신을 보낼 때마다 마음이 먹먹하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내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다시 감사하게 된다. 주어진 내 삶을 살아서 몸부림쳐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다. 결국 떠나야 할 길이다. 가는 그 날까지 살아 있고 싶다. 내 마음이 내 정신이 살아 있고 싶다. 노년의 삶에 갇히지 않는 노년이 되기를 원한다. 세월에 흘러가는 삶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나이 들어가며 노쇠해진다는 의미는 곧 안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게 됨을 본다. 요양원에 들어 오는 어르신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때 되면 식사가 제공된다. 빨래도 알아서 다 해서 옷장에 넣어 준다. 점점 그 삶에 안주하면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 그렇게 몸은 상황에 적응한다. 가끔 당신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무언가를 하려 하는 분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냥 살아간다.


요양원에서 일하며 내 삶의 마지막 모습을 항상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삶이, 내가 원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실체를 매일 확인한다. 언제 내 몸이 내 삶을 멈추게 할 지 알 수 없다. 그러기에 나는 사는 날까지 살아 있기를 원한다.  안주하지 않고, 멈추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쓸데없는 일이라 해도 나는 도전한다. 젊은 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시작했다. 어디다 쓰려 하느냐 묻지마라. 나는 살아 있기에 살아 있음을 나에게 매순간 증명하는 것이니까!


내 마음에는 항상 배움의 열정이 있기를 원한다. 나 보다는 주변 사람을 더 배려하는 삶이기를 원한다.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살아 있는 매순간이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먼 훗날 생의 마지막 자리에 섰을 때 후회없기를 원한다. 잘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해 보려고 노력은 해 봤다고 자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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