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표현하는 엄마의 마음
엄마의 글로 한 인간으로서 살아온 엄마를 만났다.
'자서전을 쓰다'를 드리고
한 주 후 엄마에게 가는 길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혹시 포기하고
안하셨으면 어쩌나,
아니면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쓰셨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엄마를
마주했다.
엄마는 한 주 동안 이만큼 썼다고
'자서전을 쓰다' 노트를 보여
주셨다.
놀라서 말이 안나왔다.
일곱개만 해 보시자고,
달랬었는데.
노트의 절반 이상을 써 놓으셨다.
그만큼 엄마의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었구나!
'자서전을 쓰다'의 앞 부분의
질문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님, 형제, 학창시절
이야기를 질문으로
만들어 놓았다.
엄마의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
보는 질문이니 엄마의 기억에
있는 그대로를 쓰면 되는
일이지만, 막상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시고
계시기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실 거라 생각했다.
생각이 잘 안난다는
말씀이었지만,
조곤조곤 질문에
답을 써 놓으셨다.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하듯
읊조리는 듯한 문장으로
답을 하셨다.
간결한 짦은 문장에서 오히려
엄마의 애잔한 마음이 읽어졌다.
엄마가 일곱살때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인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것은 알고 있었다.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엄마를 쫓다시피 얼굴도
못본 아버지에게 시집
보내버리신 분이라는 것도.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서러웠는지,
품었던 꿈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진 것에 대한 가슴
끓이는 아픔도,
새엄마에게 등 떠밀려 얼굴도
모르는 남편에게 일생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병약한 남편을 돌보며
어린 3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계를
책임지며 몸부림쳐야 했던
고통도,
그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한 여자가
거기 있었다.
그냥 우리 엄마였는데.
아픔도 서러움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던
엄마였는데.
항상 그 자리에서 별다른
감정없이 살아가는
엄마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우리 엄마는 원래 그렇게
고목 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온
한 인간을 만났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보였다.
자서전을 쓰다'의 질문에 답하며
엄마도 마음의 상처를 많이 치유
받으신 듯 했다.
한 번쯤은 살아온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둡던 엄마의 얼굴이 밝아져
있었으니까
글로 써내려가며 엄마는 과거의
상처를 씻어 냈었나 보다.
엄마는 어린 엄마를 두고
돌아가신 친외할머니가
평생 원망스러우셨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엄마의 글을 통해 그 아픔들을
담담히 정리해 놓으셨다.
처음 엄마에게 글쓰기를 하자고
한 것은 엄마가 청력을 잃고
세상에서 도망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며 노인우울증을
걱정했고, 결국은
치매예방을 위해서였다.
너무나도 고마운 노트.
'자서전을 쓰다'를 통해 엄마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그 모든 아픔을 가지고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준
엄마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