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마치 봇물을 토해
내듯 글을 쓰셨다.
아니 '써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써 놓으신 글들이
정말 많았다.
거기에 예전에 써 놓으셨던
글들을 미리 찾아서 펼쳐
놓으시고 읽어보라 하셨다.
엄마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눈동자는 소녀 같은
설레임으로 생기가 돌았다.
엄마가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지만. .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마치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엄마의 글쓰기는 활활
피어나는데, 어디선가 그 불이
꺼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쓴다는 것. 자체로 큰 기쁨을
느끼고 계시기는 했다.
그 기쁨의 한계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육체적인 젊음이 있을 때는
글을 쓴다는 희열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
내가 좋다는 것이
모든 이유가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노인의 마음은 어린 아이가 된다.
요양원에서 일하며
어르신들을 통해 배웠다.
전직 해외특파원, 소설가,
교장선생님, 화가. .
한 때는모두 대단하신
분들이었다.
남들의 칭찬,관심, 인정과
같은 것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셨던 분들이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일
자체로 당당했었다.
그렇게 대단하셨던 분들이
얼마나 칭찬과 인정, 관심에
목말라 했었는지. .
처음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었다.
칭찬하려는 의도보다,
정말 내가 보기에 멋있어 보여서,
'정말 대단하세요. 멋있어요'
나의 이 말에 침울하던
어르신들의 얼굴이 피어나고,
또 다른 시도를 받아들이시는
경험을 했다.
요양사들 교육 시간에
어르신들께 칭찬을 많이
하라는 원장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해서는 안된다.
무언가 근거가 있어야
어르신들도 받아들이시고
up이 된다.
엄마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목적이 있어야 했다.
엄마의 글을 올리는
블로그를 만들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보다
엄마가 보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엄마가 휘갈기며 두서없이
써 놓은 글을 내가 정리해서
올리면 그래도 볼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가 엄마글을 매체에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 준다면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누구라도 들어와서 봐주면
우리 엄마도 작가가 되는 거니까.
손녀딸들의 협찬으로
블로그명은 섬마루 노랑장미
닉네임은 홀벗으로 정했다.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고,
내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적당한 사진을 찾아서 넣고,
줄을 다시 정리해서 엄마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 블로그에 올린 엄마글을
보여 드렸더니, 엄마 얼굴이
그야말로 함박꽃이 되었다.
'제법 뭐 같다야!'
'엄마도 이제 작가야.
누군가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면 작가야'
평생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엄마의 꿈을 이렇게라도
이루어드렸다.
엄마의 핸드폰에 네이버블로그
앱을 깔고, 언제든 들어가서
보시도록 가르쳐드렸다.
감사하게도 하루에
한 두명이 읽어 준다.
엄마에게 오늘은 4명이나
읽었다고 카톡을 했더니
'아이고'라고 답이 왔다.
아마도 행복하다는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