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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 Jan 15. 2024

엄마와 자전거

기억상점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두 발자전거 뒤에 작은 보조바퀴 2개를 달고 다녔다. 딱히 창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저절로 중심도 잡히고 편하니 계속 보조바퀴를 달고 다니고 싶었는데,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어느 주말 그녀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아파트 공터로 가서 과감히 양옆의 작은 동그라미들을 떼어 버렸다.

‘이제 두발자전거 탈 줄 알아야지. 보조 바퀴는 애기들꺼야.’

중심을 잡아보려 해도 처음 온전히 타보는 두발자전거는 너무 어려웠고, 핸들을 왼쪽 오른쪽으로 휙휙 돌리다 갓 태어난 고라니처럼 휘청거리며 넘어지기 일쑤였다. 평소 다정했던 엄마는 그날따라 엄격한 얼굴을 한 채 나의 고난을 끈질기게 지켜봤다. 오빠는 기어가 들어가는 ‘어른 자전거’로 주변을 알짱거리며 신경을 거스르기나 했었고.

‘엄마 손 놨어? 손 놨어?’ ‘안 놨어!’ 하는 대화가 반복되길 몇십 번. 그날 해가 어스름해지기 직전에서야 나는 그녀를 공터 중앙에 두고 크게 한 바퀴 도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두발자전거를 탈 줄 아는 어른이 된 후 알게 된 가장 큰 반전은, 엄마가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거였다. 배신감 반 놀라움 반으로 엄마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어릴 때 자전거를 못 배웠으니 딸내미는 꼭 배우길 바랐다고. 어쩐지…여행 가면 꼭 아빠랑 2인용 자전거 타더라.

그녀는 나이 60에 처음으로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작년에 공원에서 하는 자전거 타기 수업에 참가해 조금 배워두고, 올해 한 번 더 수업을 들었을 때 ‘처음 아니신 분?’ 하는 질문에 살포시 손을 들었고, 그 결과 왕초보반이 아닌 중급반으로 배정되었다고 뿌듯해하던 그녀의 말간 얼굴이 떠오른다.

올가을에는 엄마와 자전거를 탔다. 부모님은 지난해 큰 공원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갔는데, 따릉이 정기권을 끊어서 집에서 공원을 통해 한강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한강까지 처음 다녀온 날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계획 없이 연차를 낸 어느 월요일에 엄마 아빠를 만나 코스모스 구경을 하고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아빠, 엄마, 나 순으로 출발해 본다. 열심히 페달을 밟는 엄마의 동그랗고 귀여운 뒷모습에 올라간 광대가 언뜻언뜻 보인다.

햇살이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잠깐씩 비치고, 더위가 가신 초가을의 바람이 귀를 스치고, 아빠와 엄마가 힘차게 페달을 굴리며 가는 것을 보는데 왜인지 코 끝이 조금 시큰거려 온다. 이 순간이 나에게 나중에 소중한 한 페이지가 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핵심기억 구슬을 넣는 장면처럼, 이날의 기억은 기쁨이의 노란색과 슬픔이의 파란색이 조금 섞인 오묘한 색의 구슬로 내 ‘가족’ 섬의 기억 창고에 저장되었다.

이런 페이지들을 많이 엮어두고 힘든 날 하나씩 꺼내 읽고 싶다. 어쩌면 부모님과의 추억은 지금보다는 나중을 위한 쿠션이 되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건강함에 감사하고 일상의 무탈함에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


단풍이 지기 전에 자전거를 또 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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