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저편, 엄마의 밥상

20년 전, 엄마의 이야기

by 정 영 일

[기억 저편, 엄마의 밥상]

– 20년 전, 엄마의 이야기다...


결혼하고 인천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점점 ‘아들’보다는 ‘남편’,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바쁘다는 이유로, 멀지 않은 본가엔 좀처럼 발길이 닿지 않았다.


통화만 가끔 했을 뿐, 얼굴을 뵌 지는 꽤 오래였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왔다.


> “언제 밥 한번 먹으러 올래? 네 좋아하는 김치찌개랑 조림 해놨어.”


그 말이 참 따뜻하면서도,

한편으론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대답했다.

> “이번 주는 좀 바빠서요. 다음에 갈게요.”


김치찌개, 고등어 조림… 분명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땐, 그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성공, 회사, 사람들과의 약속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가 수영장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쓰러지셨단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차가운 응급실 침대 위, 마르고 작아진 엄마를 마주했다.

작고 주름진 그 손을 꼭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왜요… 밥 한번 같이 먹자고 그렇게 말했잖아요…”

의사는 조심스레 말했다.

> “가족분들…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병실 안에 있던 모두가 울음을 터뜨렸다.

특히, 아버지.

무뚝뚝하고 한 번도 눈물 흘리는 걸 본 적 없던 그분이,

떨리는 손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는… 조용히, 깊이 우셨다.


하지만 기적처럼,

엄마는 수술 끝에 살아나셨다.

의사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극적인 회복이었다.


며칠 뒤,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나는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다.

그리고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는,

정갈하게 포장된 반찬통들이 줄지어 있었다.


> “영일이 조림”

“영일이 좋아하는 김치찌개”

“영일이 좋아하는 열무김치”


하나하나에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맨 아래, 접힌 메모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영일아,

언제 올지 몰라서 계속 해놓는다.

너 바쁜 거 알아. 그래도 괜찮아.

때가 되면, 먹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날까지 잘 지내, 우리 아들.”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무도 없는 부엌,

엄마가 밥을 해 주던 그 공간에서

조용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울었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엄마는 늘 ‘밥’을 핑계 삼아,

그저 내 목소리가 듣고 싶고, 얼굴이 보고 싶었던 거란 걸.


그녀가 매번 밥을 차리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는 걸.


이젠 아버지가 먼저 떠나시고,

혼자 지내시는 엄마.

나는 조금 더 자주 전화를 하려고 한다.

가끔 김치찌개라도 함께 먹으러 가려 한다.


그게 엄마에게는,

세상 무엇보다 큰 선물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에...


(작가의 말)

누군가의 밥상이 그리운 날, 당신 마음에도 조용히 올라오는 따뜻한 기억 하나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김치찌개 한 그릇 속에도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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