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의 끝에서 만난 고통, 그 뒤에서 선 부모]
"한 순간의 자유가
누군가에겐 평생을 바꾸는 고통이 된다면
우리는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예전 주유소에서 함께 근무하던 선배님이 계신다.
그분에겐 오랜 친구 한 분이 있었다.
KT에서 수십 년을 근무한 뒤, 조용히 퇴직하고
소소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의 딸이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이 왔다.
IT업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던,
그리고 주말이면 라이딩을 즐기던
서른 살의 미혼 여성.
늘 에너지 넘치고
자신의 삶을 멋지게 가꾸던 딸이었다.
사고는 한순간이었다.
생명은 겨우 건졌지만,
골반뼈가 으스러질 정도의 중상이었다.
의사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남은 건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걷기조차 어려운 몸...
그때부터,
그 부모는 매일같이 눈물로 하루를 견뎠다고 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부터 재활까지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던 부부는
간병인을 쓰는 대신
딸의 고통을 함께 살아내는 걸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시간이 꽤 흘렀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또 하나의 기억.
가수 강원래 씨의 사고.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
강남 한복판에서 오토바이를 몰다 차량과 충돌해 반신불수가 된 비극...
그 역시 자유 위에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자주 인사를 주고받는
대학 2학년 학생이 있다.
성실하고 밝은 친구.
올여름엔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본다...
얼마 전엔 오토바이를 자랑하듯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건네더니,
다음 날엔 더 멋진 개인 오토바이를 타고
늦은 밤 단지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이유 없이 마음이 복잡해졌다.
선배님의 친구 딸이 떠올랐고,
강원래 씨의 사고가 겹쳐 떠올랐고, 그리고 내 사고도 생각났다...
4년 전,
단지 커피 한 잔을 사러 나가다가
중앙선을 넘은 차량이 정면으로 내 차를 들이받았다.
차였기에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그게 오토바이였더라면
아마 나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오토바이는 묘한 존재다.
두 바퀴 위를 달리며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해방감이 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 이면에는
언제든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속도가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누군가의 인생을 부수고,
부모의 삶을 눈물로 바꾸고,
평범했던 하루를, 영영 바뀐 하루로 만들 수도 있다.
속도는 자유일까.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가슴에
멈추지 않는 눈물을 남기는 자유는,
그건 자유가 아니라,
폭력이다...
오토바이 위의 즐거움이 소중한 건 안다.
하지만 그 바퀴가
누군가의 미래를,
누군가의 꿈을,
그리고 부모의 마음까지 짓밟을 수도 있다는 걸 ,
기억했으면 좋겠다.
딸의 두 다리가
다시는 예전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걸 보며
그 아버지는 함께 무너졌고,
말없이 웃는 딸의 앞에서
그 어머니는 돌아서서 울었다...
부모는 그렇다.
자식의 고통에 말없이 무너지는 존재.
하루를 통째로 바쳐서라도
그 아이가 한 걸음이라도 더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
오늘 밤도
단지 앞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그 젊은 친구는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나는 미소로 화답하면서도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그 아이의 부모가,
오늘도 무사한 밤을 맞게 해달라고.”
(작가의 말)
이제 이 글은
단순히 오토바이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부모로서,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쓰는 조용한 외침이 되었습니다. - 우풍 정영잉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