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음표들, 그리고 나

by 정 영 일

[지나온 음표들, 그리고 나]

최근 딸아이가 대학 친구들과 함께 가평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딸은,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조심스레 내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환하게 웃는 네 명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아래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창춘아, 제발 가지 마라.”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뭉클해졌다.

스무 살 초반, 그 찬란하고 거침없던 시절을 꼭 붙잡고 싶은 마음은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같지 않을까 싶었다.


딸은 어느덧 서른이 되었고,

나 역시 뒤돌아보니 쉼 없이 달려온 세월이 벌써 32년이나 된다.

직장생활 내내 내 곁을 지켜준 건 다름 아닌 ‘음주가무’였다.


일을 마치고 어두운 조명 아래 술잔을 기울이며 부르던 노래 한 곡.

그건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나 자신을 놓아주는 작은 쉼표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참 끼도 많고, 웃음도 많던 사람이었다.

비록 무대는 아니었지만, 회식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심을 담아 부르던 노래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또 하나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삶은 늘 같은 박자로 흐르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무거워진 일상,

쉽지 않은 현실 앞에서 ‘음주가무’는 점점 사치가 되어갔다.

내가 즐기던 것들은 하나둘 멀어졌고,

흥겨움이 떠난 자리엔 고요하고 단단한 침묵만 남았다.


특히 지난 4년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섬에 홀로 머문 듯한 시간이었다.

오직 한 길만 바라보며 묵묵히 견뎌야 했고,

그 속에서 나는 많이 달라졌고, 조용해졌고,

어쩌면 조금은 더 깊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얼마 전,

무심코 지나치던 길에서 노래방 간판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한 번쯤은 불러보고 싶었다.

예전 그 시절의 노래들을...


혼자 들어간 노래방에서,

음료수 하나를 시켜놓고 기억 저편의 곡들을 불러본다.

예전처럼 목소리는 올라가지 않았고,

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조금은 허전했고, 조금은 쓸쓸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생각이 스쳤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위로하고,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가수’라는 사람들.

그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존재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어떤 음역대든 소화하고,

감정을 담아 단 한 곡으로 수많은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그들.

그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타고난 재능이며 때로는 천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상상도 해본다.

TV 속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혼신을 다해 노래하는 내 모습.

관객의 눈빛, 울림 가득한 박수,

그리고 내 노래에 빠져드는 사람들...


현실은 아니지만,

그런 상상 하나쯤은 살아가는 데 꽤 괜찮은 위로가 된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조용해졌고,

노래를 부르는 일도 뜸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노래가 흐른다.

추억처럼, 혹은 작은 바람처럼.


그리고 딸의 사진 속 문구처럼,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 “가지 마라.”


이 시간 또한 언젠가 지나고 나면

그리운 한 장의 사진처럼 남을 테니까.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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