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담은 얼굴, 그리고 가족의 온기]
새벽이 찾아오면, 나는 자주 나 자신에게 되물어봅니다.
"오늘도 살아 있구나. 내가 여전히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구나."
그 단순하지만 깊은 깨달음이 내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워 세상은 고요한 꿈속에 잠겨 있지만, 나만은 조용히 깨어 있는 그 시간.
그렇게 하루를 맞이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구나."
그 간단한 진실이 때로는 나를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너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그 속에는 나를 지탱해준 수많은 순간들이 담겨 있음을 깨닫습니다. 15년 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삶의 균형, 그리고 가족)
어느 날, 내 얼굴에 갑자기 마비가 찾아왔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갑작스러운 병명과 함께, 겨울의 한기 속에서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타고 다니며 치료를 받던 시절. 매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장 미안한 사람은 그때의 아내였습니다. 내가 아프고 힘든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고, 그 마음은 결국 나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장인어른께서 하얀 봉투를 건네며 한마디 하셨던 말이 아직도 마음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남자가 돈이 없으면 자신감이 떨어져.”
그 말은 그 당시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봉투를 받은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부끄러움과 미안함,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뒤섞여 흘렀던 그 눈물은, 장인어른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무게,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랑)
그때, 아내의 얼굴이 여전히 떠오릅니다. 나는 결코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병을 앓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동안, 나의 무능력함에 마음이 무겁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아내가 말했던 **"오빠, 이젠 일을 다시 나가면 안 되겠다"**는 그 말이,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내 감정은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으로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가족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나갔습니다. 그 선택이 아내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의 기쁨을 위해서 내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 가족을 향한 사랑과 책임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 결정이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었고, 내 가족을 지켜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그 상처도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얼굴에 남아 있는 그 흔적들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이제는 그때를 되돌아보며 생각합니다.
기억이란, 결국 시간을 담은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든 시간들, 아픔의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지켜준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내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가족의 사랑과 그 작은 몸짓,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다시 한 번 느끼며, 나는 고백합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임을.
그 선물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건 바로 그런 작은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시절, 가족과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온기, 그 속에서 느꼈던 사랑의 깊이가 오늘도 내 마음 속에서 고요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우풍 정영잉 드림
#삶의균형 #가족의사랑 #가장으로서의무게 #가족의온기 #살아가는법 #시간을담은얼굴 #가족과함께 #삶의의미 #감동적인이야기 #사랑의힘 #가장으로서의책임 #기억의소중함 #오늘을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