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이름이 남지 않을 때]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온 톡에는
말 한마디 없이 “득도다조(得道多助)”라는 고사성어만 적혀 있었다.
도를 얻는 사람에게는 도와주는 이가 많다는 말.
나는 이 문장을,
평소 관계를 어떻게 쌓아왔는지가
결국 삶의 어느 지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두 달째다.
묵묵히 수행하듯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지치고, 힘이 빠졌다가도
다시 용기와 희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들이
파도처럼 반복된다.
그 고사성어를 바라보다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15년 전 사회생활 속에서 인연이 닿아
한동안은 자주 만났지만,
어느 순간 서로의 방향이 어긋나 자연스레 멀어졌던 친구다.
아버지가 소천하셨을 때도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년이 넘은 뒤,
그 친구의 모친상 부고를 받았을 때도
망설임은 없었다.
이미 인연의 골은 깊어졌고,
연락처는 오래전에 휴대폰에서 지워진 뒤였다.
물론 가끔,
사회 친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는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더라,
차를 바꿨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친구란, 지난 오해 하나로
쉽게 끊어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우정이란 선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관계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돈이나 명예, 쾌락 같은 목적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삶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행복한 삶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의미에 가깝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못하고,
서로의 삶에 더 이상 선이 되지 못한다면
그 관계는
친구라는 이름을 끝까지 붙들고 갈 수는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 마음속에서 더 이상 ‘친구’라 부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인연이 거기까지였다는 사실일 뿐이다.
득도다조.
도를 얻는 사람에게 돕는 이가 많다는 말은
어쩌면
모든 인연을 붙잡으라는 뜻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갈 인연만을
알아볼 줄 아는 태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이제는
곁에 두고 싶은 친구가
다섯 명이면 충분하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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