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라는 선물

by 정 영 일

[멈춤이라는 선물]

문득, 하나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으로부터 여섯 달쯤 전, 하조대의 조용한 해안가 카페에서

긴 시간 글을 쓰던 어느 날의 풍경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고, 그 고요를 문장으로 옮겨 적던 시간.

이상하게도 그날의 바다는 제 마음 한편을 깊고 잔잔하게 가라앉혔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돌아오는 버스는 이미 끊겨 있었고,

양양으로 향하기 위해 택시에 올랐습니다.

운전석에는 60대의 여성 기사님이 계셨습니다.


차는 조용히 밤길을 달렸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분은 오랜 시간 운전을 하며 마주한

수많은 삶의 장면들을 들려주셨습니다.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3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그 안에는 묘한 온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레

제가 쓴 두 편의 글을 보여드렸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한 음악 한 곡을 함께 틀었습니다.


글을 다 읽은 뒤,

그분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으셨습니다.

“혹시… 작가님이세요?”


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에세이집 하나 내보는 게 제 소박한 꿈이에요.”


그분은 제 글이 공감이 되었고,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가

그날 밤, 제 마음을 오래도록 밝혔고

저는 감사의 마음으로

택시비에 작은 마음을 더했습니다.


양양에 도착해 내리려던 순간,

그분은 다시 조심스럽게 물으셨습니다.

“혹시 이름이랑… 그 에세이집 제목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망설임 없이 제 이름을 말했고,

마음속에만 간직하던 제목을 꺼내 놓았습니다.


“정영일입니다.

고요함 속 외로움, 그리고 평온이라는 선물.”


차창이 내려가고,

그분은 멀어지는 거리 속에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셨습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도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알았습니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따뜻한 위로가 될 수 있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얼마 후,

자주 머물던 속초의 작은 모텔에서

여사장님과 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책 읽는 것이 취미라던 그분과의

30분 남짓한 대화는 유난히 즐거웠고,

저도 모르게 제 글 몇 편을 보여드렸습니다.


“참 진솔하네요.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그 한마디와 함께

“언젠가 속초에 내려와서

글을 써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날의 따뜻함도

아직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글이란 참 신기한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결을 꺼내어

작은 불씨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치유가 되고,

고단한 하루의 끝에서

조용한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종종 냉혹하지만,

그렇다고 차가운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말없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들은

아주 작은 순간 속에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글을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랑도, 감정의 과시도 아닙니다.


다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기를,

그 멈춤 속에서

조용한 방향의 전환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종종 더 빨리 달리려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럴 때일수록

멈추어 서는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 멈춤 속에서 우리는 종종, 진짜 ‘길’을 발견하곤 하니까요.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

작은 불빛 하나를 켜주는

조용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단순히 제 경험을 나누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아픔을 견디고,

그 안에서 길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쩌면 ‘멈춤’일지도 모릅니다.


바쁘게 달리는 삶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바라보는 용기.

그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가야 할 방향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작은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한 문장, 한 마음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잠시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며,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것이 제가 글을 쓰는 이유이자

가장 큰 보람일 것입니다.


- 우풍 정영일 드림


#멈춤의미학

#하조대 #양양의밤 #속초기억

#글쓰는사람 #일상의기록 #위로의문장

#에세이추천 #마음산책 #천천히살기

#조용한희망 #멈추어바라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고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