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것, 살아 있다는 증거

by 정 영 일

[먹는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

오복(五福)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즐거움은, 어쩌면 먹는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자, 살아 있으려는 의지와도 맞닿아 있다.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솔직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삶의 국면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삶이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낭만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하루의 기쁨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그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삶 말이다.


예전에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한적한 시골 어귀의 바닷가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한 적이 있다. 소문난 전복장과 고등어조림이 상에 올랐고, 전복 특유의 윤기와 간장의 깊은 빛이 식욕을 먼저 흔들었다. 숟가락으로 전복을 가볍게 들어 올려 입에 넣는 순간, 짭조름함과 바다의 향이 혀 위에서 천천히 풀어졌다. 몇 번의 씹는 사이 고소함이 스며들고, 삼키는 순간에는 이상하리만큼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아내와 장인, 장모님은 여전히 그날의 전복장을 이야기한다.

“그때 그 전복장, 참 맛있었지.”

그 말 속에는 단순한 맛의 기억이 아니라, 함께 웃고 천천히 씹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그 시간의 온기가 함께 담겨 있다. 아마도 음식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친구 둘과 점심 약속을 잡았다.

“안양 근처에서 제일 먹을 만한 데로 가자.”

그렇게 향한 한정식집에서 간장게장과 굴비를 주문했다. 간장게장은 살이 단단하면서도 입안에서 스르르 풀어졌고, 굴비는 젓가락으로 살을 떼는 순간부터 고소한 향이 먼저 올라왔다.


특히 한 친구는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천천히 씹으며, 잠시 말을 멈춘 채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삼키고 나서야 한마디 했다.

“야, 먹는 즐거움은 세상에서 으뜸이야.”


그 말에 우리 모두 웃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씹고, 넘기고, 혀에 남은 맛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잠시 아무 걱정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몇 분이 하루를,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입안 가득 씹히는 질감, 혀에 스며드는 간의 농도, 삼킨 뒤 천천히 올라오는 여운까지—그 모든 과정이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머물게 한다. 먹는 동안만큼은 과거도 미래도 잠시 멀어진다.


그래서일까. 오복 중에서도 먹는 즐거움은 유난히 오래 남는다.

몸에 남기보다 기억에 남고, 기억보다 마음에 남는다.

오늘도 우리는 또 한 끼를 먹으며 살아 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소소한 즐거움 하나로,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 우풍 정영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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