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의 반지

by 정원

요즘은 자녀를 하나 아니면 둘을 낳을 뿐이니 고모, 이모, 삼촌이라는 친척 명칭도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만 보더라도 3~4명이 평균 자녀수였다.

윗 세대는 보통 6~7명 의 형제자매, 많은 사람은 9~10명의 형제자매를 가진 분들도 있었다.

우리 집만 보아도 이모 6분, 외삼촌 2분, 작은아버지 3분, 고모 2분 계셨다.


그중 막내 고모와는 각별한 사이였다. 고모 나이 11살 때 내가 태어났으니 10살 차이. 동생이 없던 고모에게 나는 동생이었다.

어릴 적 고모가 학교 다녀오면서 사탕을 사다 주웠던 기억도 남아있다.

나 또한 윗 형제가 없는 맏이였으니 고모와 나는 자매와 같은 정을 나누고 살아왔다.

고모는 고등학교 졸업 후 결혼 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생활했다. 내가 중학교 때 수예 숙제를 대신해 주기도 했고 목욕탕도 같이 갔다. 내게는 다정한 언니였다.

고모가 결혼한 후에도 고모 시어머님 계신 고모집에 놀러 갔다. 내가 결혼한 후 애 둘 남편 온 가족이 2박 3일씩 놀다 오기도 했다.

고모집은 충북 심천 금강이 흐르고 산도 아름다운 소읍이다. 기차역이 아름답다고 선정된 곳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곳이다.

요즘도 난 고모를 언니 삼아 자주 전화하고 마음의 의지처로 삼고 있다.


그런데 고모한테 말 못 할 비밀이 있으니 아시면 깜짝 놀랄 것이다.

고모가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 첫사랑의 산물 수정반지의

행적이다. 그 반지는 내가 몰래 지금은 미국 이민 간 고등학교 동창에게 주었다. 연 보랏빛의 예쁜 반지였다.

결혼 반대하면서 고모 오빠인 나의 아버지께 빼앗긴 것이다. 장롱서랍 속 있던 것을 내 맘대로 친구에게 주었고 그 친구는 멀리 미국에 갔다 소식도 모른다.

고모가 가진 일생 단 한번 사랑의 흔적을 조카인 내가 맘대로 친구에게 주었으니 50년 세월을 넘어 지금까지 고모에게 미안하다


고모는 중매로 지금의 고모부 만나 남매 키우고 아주 성실하고 예쁘게 살아오셨다.

나이 80 이 되셨지만 여전히 나에게 언니 같은 정을 주시면서

정성스럽게 수확한 농사물도 보내 주신다.


어떻게 해야 하냐? 수정 반지의 행적을 더 늦기 전 고모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나?

고모의 아프고 시렸던 첫사랑의 흔적을 마음대로 없애버린 조카의 철없음을 용서해 주시려나?

아니면 젊은 시절 지나간 추억을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실까?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지금도 보라색 자수정을 보면 고모반지가 생각난다.


고모 미안하지만 난 아직 스스로 자수할 마음이 힘드네요.

대신 전화 자주 드리고 맛있는 것 보내드릴게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작가의 이전글아쉬운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