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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팅 앱 사용자 Sep 10. 2024

인터넷 뱅킹과 이탈리아 디저트 카놀리

편지 6. 9월 8일

언니에게

오늘은 수강신청(이제 일상임)과 인터넷뱅킹으로 골머리를 썩었어. 신한은행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려면 otp라는 보안키가 필요한데, 내가 해외에 있는 바람에 보안키를 받을 수가 없어 뭔가 엄청나게 복잡해졌어. 원래 해외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인터넷 뱅킹이나 계좌이체 문제를 다 처리하고 와야 하는 거였더라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메일 상담을 하려고 했는데, 이메일 상담을 하려면 신한은행 인터넷 뱅킹에 로그인을 해야 해. 그런데 난 otp가 없어서 신한은행 아이디는 있어도 비밀번호를 발급받지 못해 로그인조차 못하는 상황이야.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어. 계속 신한은행 홈페이지를 보고 있다간 노트북을 부실 것 같았거든.



머리도 식힐 겸 피티 궁전 앞에서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려고 책을 챙겨 나갔어. 여기 사람들은 잔디밭에 엎드려서 혹은 계단에 앉아서 독서를 하더라고. 뭔가 멋져 보여 나도 해 보려고 했지. 그런데 햇살도 엄청 강하고, 이탈리아어로 ‘이 물건은 어디 있지?’라는 수준의 문장을 이탈리아인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곳에서 보고 있기 민망해서 그냥 구경만 하다 왔어. 이탈리아인은 대단한 거 같아. 뜨거운 햇빛을 이기고 야외에서 독서를 하다니. 다들 독서 광인 건가? 여기 햇빛은 한국이랑 달라. 거실 소파에서 낮잠 자다가 햇빛에 내 살이 지글지글 타는 게 느껴져서 깼을 정도야. 그래도 난 비 오는 날엔 우울해서 이탈리아 같은 쨍한 날씨가 좋아. 내가 이탈리아 선택한 이유도 날씨가 좋아서잖아. 모두들 이 이유를 듣고 비웃긴 하지만 흐리고 비 오는 곳에 살면 난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어.



이제 여유가 생겨 그런지 드디어 사람들도 눈에 들어와. 그 전엔 지도를 보며 길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카메라도, 지도도 없이 그냥 아는 길로 가니까 사람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여태 몰랐는데, 이탈리아엔 잘생긴 남자가 많더라고. 곱슬거리는 진갈색 머리, 문신, 수많은 액세서리로 공작새처럼 화려해. 내가 제일 수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저녁을 먹으려고 중앙 시장 쪽으로 갔어. 유명한 곱창버거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도착하고 보니 저녁엔 문을 안 열더라. 난 더 이상 오전만 영업하는 가게를 보고 놀라지 않아! 여긴 학교 행정팀도 오후엔 쉬는 이탈리아잖아. 그래서 다른 먹을 걸 찾다가 카놀리라는 걸 처음 먹어봤어. 인생 디저트를 만난 거지. 동그랗게 말아진 튀김과자 안에 찐덕하면서 상큼한 크림이 가득 채워져 있고 설탕에 절여진 오렌지가 그 위에 붙어있어. 처음엔 사면서 와 이게 무슨 3유로나 하지 했는데 먹고 난 후엔 감동 그 자체였어. 두 개 사 먹을 걸 후회했어. 마트에서 파는 건 눅눅하고 느끼해 보였는데, 여기서 먹은 건 차가우면서도 달달한 크림과 바삭한 쿠키의 조합이 예술이었어. 오렌지까지 풍미를 더 했지. 내일 가서 또 먹어야지. 

-은경이가


P.S

내가 11~17일 동안 영국 여행 가잖아. 그런데 이게 의외로 삶에 영향을 줘. 내가 산 음식은 나만 먹으니까, 11일까지 모든 음식을 해치워야 해서 사놓은 과일이랑 과자를 싹 다 먹었어. 편지 쓰고 있는 아직도 배부르다. 생각해 보니 과자는 왜 먹은 거지. 돌아와서 먹어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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