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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팅 앱 사용자 Sep 09. 2024

피렌체에서 웨딩 촬영을

편지 5. 9월 6일

언니에게

어제 처음으로 H대학 교환학생들과 다 같이 만났어. 나, 은이 그리고 식원 오빠 이렇게 3명이야. 은이는 나보다 이탈리아에 한 달 일찍 와서 종종 만났는데, 식원 오빠는 그제 피렌체에 도착했어. 우린 같이 저녁을 먹고 돈을 모아 체중계를 샀지. 여기 와서 진짜 많이 먹었거든. 티본스테이크 먹고, 파스타면은 배가 안찬다면서 2인분씩 먹고, 옆에 제지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초콜렛이랑 과자 엄청 먹고…… 초반에만 긴장해서 뭐 잘 안 먹었지 긴장 풀리니까 엄청 먹더라. 배가 올챙이처럼 볼록해졌어. 떨면서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많이 걸어 다녀서 그런지 몸무게는 그대로더라고. 근데 배는 똥똥해. 내 생각엔 변비에 걸려서 그런 거 같아. 룸메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배변활동이 원활하지 않아. 난 밖에 누가 있으면 볼일을 잘 못 보는 타입이라 고통스러워. 차차 나아지겠지? 1년 동안 올챙이배로 살 순 없어!



기쁜 소식은 드디어 학생증 발급 신청에 성공했어! 학생증 발급하는 데에도 거의 6개의 서류가 필요해. 심지어 체류허가증 영수증까지. 이탈리아에서 영수증은 내가 서류를 제출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엄청 중요해. 모르고 그냥 버렸으면 큰일 났을 뻔했지. 3번 만에 신청 성공해서, 담당자에게 들뜬 목소리로 학생증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니 10일 후쯤 나온다더라. 난 바로 나오는 줄 알았는데…… 학생증에 적힌 번호가 없으면 수업 목록을 확인할 수 없고 어학코스도 신청을 못하거든. 또 나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어. 학생증이 나오는 10일 후엔 난 영국 여행을 가 있을 계획이야. 그래서 영국 가기 전에 수업 목록을 훑어보고 마음 편히 여행하려 했는데 정말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초조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영어수업 다시 확인하는데 홈페이지 'International University'이라고 쓰여 있어서 분노했어. 글로벌한 건 맞지. 다만 관리를 안 할 뿐. 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온 나도 문제야. 왜 그랬니, 은경아! 아악



이렇게 학교 때문에 골머리를 썩다가도 피렌체를 돌아다니면 도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모든 걸 잊게 돼. 아 진짜 피렌체...... 이런 얼굴 뜯어먹고사는 도시 같으니라고. 나처럼 피렌체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결혼 촬영을 하러 이 도시로 와. 지나가던 사람들도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는 박수를 쳐줘. 오늘 실제 결혼식을 목격했는데 박물관에서 하더라고. 결혼식장이 박물관이라니 무척 신기하고 이탈리아스러웠어. 재밌는 건 신랑 신부가 밖으로 나오면 하객들이 꽃이랑 잘게 부순 파스타나 쌀을 던져줘. 처음엔 다 꽃인 줄 알았는데 파스타 면인걸 보고 엄청 웃었어. 오늘만 결혼 촬영하는 커플들 10쌍은 본거 같아. 날씨가 좋고 토요일이어서 그런가 봐. 아직은 결혼이 나에게 너무 먼 일이야. 다들 결혼에 대한 환상 하나씩은 있다는데 난 그런 것도 없고. 그래도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이쁘고 좋을 거 같아. 돈이 있다면 말이야. 언니는 어떤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갑자기 궁금하다.


-은경이가



P.S

난 개강일이 22일있은 줄 알았는데 건축과만 22일이고 내가 들을 전공인 political science는 15일이 개강이야. 하지만 난 11일부터 17일까지 은이와 런던 가기로 해서 이미 비행기 표도 사고 숙소도 예약해놓은 상태야. 다행히 이탈리아는 대학에선 출석체크를 잘 안 한다더라고. 그런데 사실 뭐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냥 갔을 거 같긴 해. 무려 영국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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