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SCT 검사 결과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엄마, 아빠’
내가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 두 문장만으로
아이의 세계를 모두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부모인데
그런 부모에게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니.
아이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며
좋은 것만 해주고 싶었고
부족한 건 채워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애썼는데
정작 아이가 원하던 게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고 살아온 것 같았다.
내 기준으로 좋은 것을 주고 있었나 보다.
아이가 말한 ‘따뜻함’이 무엇이었을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챙겨주는 것, 책임지는 것, 걱정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어왔는데
그 최선이 아이에게는 ‘따뜻함’이 아니라
‘관리’나 ‘기대’로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가 힘들어 보일 때
먼저 이유를 찾으려고 했고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고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게
붙잡아 주려 했다.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원했던 따뜻함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손길이나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있어도 된다는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의 마음이 충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얼굴
잘하고 있지 않아도
나아지지 않아도
그래도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있다는 감각
아이에게는 그런 시간이
‘따뜻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과
따뜻한 사람이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조금 이해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책임지는 사람일 수 있지만
따뜻한 사람은
그 책임에서 잠시 벗어나도 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늘 뭔가를 더 해주려 했고
더 나아지게 하려고 애썼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지금’을
충분히 그대로 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세계가 차갑게 느껴졌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함보다 먼저
내가 너무 멀리 앞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보다 한참 앞에서
‘이쪽이 더 안전해’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끌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따뜻함은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곁에 남아 있는 온기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방향을 정해주지 않아도
그저 같이 있어도 괜찮은 상태
아직 나는 그 따뜻함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이의 짧은 문장 하나가
내가 믿어왔던 사랑의 방식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마
이 흔들림 속에서
나는 당분간
답을 찾기보다는
조금 더 천천히
아이 곁에 머무는 연습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