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시기가 지나고 일정이 느슨해진 요즘
지독하게 따라붙는 죄책감이 있다.
아무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도
불편함이 먼저 올라온다.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 감정은 실제 상황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일을 미루고 있지도 않고
해야 할 책임을 방기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래도 되나’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누군가의 평가가 있기 전부터
스스로를 점검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바쁨은
오랫동안 성실함의 증거로 작동해왔다.
일정이 빽빽할수록 설명이 필요 없고
여백이 생길수록 이유를 덧붙이게 된다.
쉼은 자연스러운 상태라기보다
정당화가 필요한 선택이 된다.
이런 감정은 개인의 성격 문제라기보다
학습된 반응에 가깝다.
특히 어린 시절
‘가만히 있음’이 부정적으로 해석되었던 경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기준으로 남는다.
실제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 기준은 내부의 목소리로 반복된다.
그래서 휴식은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검열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쉬는 동안조차 스스로를 감시하고
생산성의 기준에 미달하지 않는지 확인하게 된다.
몸은 멈췄는데
사고는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 죄책감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성격을 구분해보려 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아니면 과거에 만들어진 규칙이
자동으로 작동한 결과인지.
이 둘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쉼의 밀도는 조금 달라진다.
쉼 자체보다 더 다루기 어려운 것은
쉼을 허락하지 않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아, 방탕하게 쉬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