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고, 통제되지 않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런 성향과 강박이 나의 공황장애와 우울증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세 달이 된 작디작은 강아지는 초반에는 분명 나에게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갑자기 챙겨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이 늘었고, 치워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나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려움도 커져갔다.
올해로 여섯 살.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계를 가진 우리 집 막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 한켠에 묵직한 무언가가 조금씩 쌓여 간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앙콩이를 만지고, 쓰다듬고, 냄새를 맡는 것이다. 반려인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강아지에게서 나는 그 꼬릿꼬릿한, 혹은 구수한 냄새는 맡을수록 좋고 또 좋다.
마음이 편해지고 몸이 먼저 안정된다. 나의 우울증 완화에 이 ‘꼬순내 테라피’가 한몫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가끔은 강아지가 신이 만든 가장 무해한 생명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주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계산 없는 온전한 사랑을 주는 존재. 나만 바라보고, 온 세계가 가족뿐인 그런 생명체.
이제는 하루라도 앙콩이의 꼬순내를 맡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작은 생명체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는,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