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톨란 지수는
꿀잼
이 미친 미장센을 휴대폰 갤러리에 모셔둔 것이 꽤 되었다
여유 날 때 느긋하게 음미해야지 하고 몇 년 째 아끼던 영화인데
새벽에 갑자기 삘이 와 버림
아무래도 야식이 땡기는 시간대라 그런지 충동적으로...
대체 무슨 배짱으로 자정 넘어서 이걸 틀었단 말인가
결국 참지 못하고 중간에 영화를 멈춰야 했다
연두부에 간장 뿌려와서 결말까지 야금야금 아껴 먹었음
먹방이나 쿡방을 보는 이유가 대리만족이라고들 하는데 그 말은 틀렸다
영상은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오히려 볼수록 배가 더 고파진다
반면 냄새는 정말로 식욕을 달래준다
잔뜩 굶주려서 기대하다가도, 냄새만 줄창 맡고 있자면
젓가락을 가져다 대기도 전에 그만 질려서 입맛이 똑 떨어져버린다
때문에 정작 요리한 사람은 음식을 맛있게 먹지 못한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남이 해준 음식이라고도 하고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의 일류 주방장인 이 사람
일요일 저녁마다 세 딸을 위해 상다리가 휘도록 푸짐한 만찬을 준비하는 이 아버지는
그래서 입맛을 잃은 지 오래다
근데 아버지 뿐만 아니라 딸들도 영 떨떠름해 보이더라
나만 혼자 배고프게 만들어 놓고 당신들은... 연두부 삼키면서 진짜 조금 화가 났었다
"간이 어떻고 뭐가 부족하고 누구는 아파트를 사고 누구는 결혼을 한대고 어쩌고 저쩌고"
밥상머리에서 누가 잡다하게 떠들래 그렇게 깨작댈 거면 나 주라
다들 인생사가 너무 복잡해서 배 채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산해진미를 눈 앞에 두고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만큼 괴로운 삶이 있을까
식탁 주위로 둘러앉은 가족들 사이 국자와 그릇, 음식은 바삐 오가는데 진심만은 오가지 않는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죄책, 자매들 간 질투와 미움과 이해,
내 인생만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위기감과 억울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은 욕망
모두가 느끼고 있으나 절대 식탁 위로는 올라오지 않는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다 쨍그랑 소리 뒤에 숨어서 이따금씩 그 흉한 모습을 드러낼 지언정
식사 중에는 꺼내놓지 않는 것이 가족들의 약속이다
식구라는 게 그래서 참 고마우면서도 답답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밥 먹을 때만큼은 모르는 척 까먹은 척
따끈한 국물이나 양념 잘 밴 생선살 같은 데 열중하는 척
식탁은 그런 척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중립지대이다
삶이 아무리 복잡하고 괴롭고 그래서 입맛도 없고 그래도,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매일매일 마주보고 같이 식사를 한다는 약속은
서로가 아무리 지긋지긋하고 불쌍하고 미안하고 그래도,
가족이기를 멈출 수는 없다는 확신을 준다
얼마나 개막장 콩가루로 치닫던지 간에 어찌됐든 이 관계의 바탕은 변함없이 애정일 것이라는 든든한 신뢰
영화는 사랑스러우면서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하고 때로는 끔찍하기까지 한
가족이라는 희한한 관계를 담백하게 잘 담아냈다
적당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막장인데다, 그림처럼 화목하지는 않아도 대충 서로를 사랑하는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이다
진짜 가족 모임 같은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한 일주일만에 얼굴 보는 모임이라
저녁 크게 차려먹고 커피에 차에 비싼 과일까지 깎아먹고
기껏 시간내고 정성스레 준비한 자리인데도
막상 떨어져 있을 때만큼 애틋하고 반갑고 그렇진 않다
중요한 소식 다 전하고 할말 떨어지면 고운 말도 잘 안 나온다
가족들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엄청 공들여 만들었는데
먹을 때 되니까 별로 동하지는 않고 오히려 조금 질려서 실망스러운 요리
더부룩한듯 권태로운 그런 가족 모임
그러나 입맛은 없어도 모른 척 매번 요리를 하고 식탁에 모여 앉기로 하는
이 의식 자체가 바로 가족인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하는수 없이 이 사람들은
목에 걸린 따끔거리는 말들을 밥 한술 크게 떠 물과 함께 삼켜내기를 계속하다가
입맛이 똑 떨어져버리고야 만 것
그리고 그렇게 억누르던 감정들은 곧 예고도 없이 터져버린다
세 번의 잇따른 결혼 통보와 함께...
아버지가 행복하길 바랐지만 그렇게까지 행복하길 바란 건 아니었어요
덕담마냥 폭탄발언 주고받으면서 하나였던 가족이 무려 네 개로 슈 슈슈 슈퍼노바 해버리고 나서야
이들은 다시 밥을 와구와구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된다
아버지도 딸들도 각자의 행복을 찾아서 하나둘씩 떠나고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오래된 집은 잡풀 무성한 빈집이 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만든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잊고 산 세월다른 가족들 다 짐 빼서 나간 뒤에 가구 없이 휑한 집
유난히 커 보이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식당과 부엌에만 불을 등대처럼 밝혀놓고
일요일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둘째 딸이다
이 장면 쫌 많이 뭉클했음
아버지랑 사사건건 부딪히며 무뚝뚝하게 틱틱대던 둘째 딸이
사실은 아버지랑 제일 닮아서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대신 채우는 거
자매들 중 가장 독립적이고 이기적이던 애가
결국 홀로 마지막까지 남아 집을 지키는 거
이런 의외성 클리셰 허엉 너무 슬프단 말
그리고도 암스테르담 발령 승진까지 야무지게 놓치지 않고 언급해준 거 너무 다행이이고 깔끔한 결말이었다
감상문 쓰다보니 어느새 아침이네
중국에 가본 적은 없는데 중식이 너무 땡기니까 아침밥으로는 중화풍 닭고기 소면 먹을 거다
그리고 오후에 만두 사 먹을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