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사랑과 환멸에 대하여

by 톨란

이 영화 톨란 지수는

꿀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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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은 로맨스인 동시에 스릴러이다. 사랑과 추격은 닮은 면이 있다. 상대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은 열망에 이끌려 숨 가쁘게 뒤를 쫓는다는 점이 그렇다. 어떤 눈을 하고 어떻게 웃거나 어쩌면 울고 있을지, “벽에 사진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그 사람 생각만을 하며” 갈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어깨를 붙잡고 돌려 세워 진짜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끝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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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 가지는 다르다. 추격에 있어서는 범인을 검거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겠으나, 다만 사랑의 경우에는 반드시 실패한다. 내가 바라던 표정이 아닌 낯선 이목구비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이별인 것이다. 내가 사랑에 빠진 대상은 실제의 상대가 아니라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상상해낸 영상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결말은 필연적으로 욕망과 본질의 불일치, 그리고 환멸이다. 이는 잠든 에로스의 얼굴에 촛농을 떨구었던 프시케의 설화에서부터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대해 탐구했던 라깡의 정신분석학에 이르기까지 오래토록 해명되어왔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은 실패한 추격이자 성공한 사랑이다. 형사인 해준은 서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안개 속으로 파고들어 가지만 결국 그녀를 피의자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방으로서도 붙잡는데 실패한다. 추격은 완결되지 못한 채 이어지고,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죽음 너머로 사라져 버린 서래가 붙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사랑은 영속한다. 헤어짐으로써 영원해진 사랑이다. 박찬욱 감독은 다채로운 연출적 기법과 장치를 통해 해준과 서래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표현한다. 둘 간의 거리감이 시청각의 두 가지 차원에서 은유되는 방식을 살펴보고, ‘거리’라는 주제가 가장 잘 표상된 장면을 하나 분석해보고자 한다.




시각적 거리: 화면


해준과 서래는 둘 사이를 가로막는 사각형의 화면을 통해 서로를 바라본다. 대화를 나눌 때는 물론이고 한쪽이 다른 쪽을 관찰할 때에도 한 겹의 막을 뚫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담아내는 이러한 미장센에서는 인식의 불완전성과 일방성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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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처음으로 독대하는 장소는 취조실이다. 독대라고는 하나 반사경 너머로는 해준의 동료 형사들이 앉아서 두 사람이 작게 웃음짓는 한 찰나, 얼굴 근육에 이는 자그마한 경련까지도 면밀히 감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해준과 서래의 확대된 얼굴은 컴퓨터 모니터 하나씩을 차지하며 녹화되고 있다. [주 1] 이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사각형의 틀 안에 갇힌 분절된 이미지들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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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이 묻고 서래가 답하는 대화를 통해 해준은 서래를 평가하며 그녀에 대한 첫인상을 형성한다. 해준은 직각의 유리와 화면, 각진 모서리들로 둘러싸인 방 안에 놓인 서래를 만난다. 그리고 이 위험한 향기를 풍기며 똑바른 시선과 언어로 맞서 오는 낯선 이에게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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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 다음으로 살펴볼 만한 대화의 형태는 휴대폰 메시지를 통한 것이다. 영화에서는 사물의 시점에서 인물을 비추는 숏이 자주 등장하는데, 해준이 서래와 문자를 주고받는 씬에서도 휴대폰 액정 너머에서 해준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듯한 앙각 숏이 독특하다. 이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서 활자를 입력하고 있을 서래의 시선이다. 문자를 받은 해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그려보는 듯한 서래의 시선은 문자를 보낸 서래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는 해준의 시선과 교차한다. 액정 뒤에 숨겨진 실물을 예측하고 가늠하는 시선들은 서로 엇갈린다.




또한 영화에서는 관음의 모티프가 반복된다. 부산에서는 해준이 서래를, 이포에서는 서래가 해준을 관찰한다. 그리고 관찰자와 대상의 공간은 창문, 카메라나 망원경의 렌즈, 혹은 CCTV 화면 등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관찰자는 무성의 움직임에 내레이션을 덧씌우면서 제멋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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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장면이 소파에서 담배를 피우다 웅크려 잠든 서래를 잠복근무 중인 해준이 망원경으로 살피는 씬이다. 해준은 깊이 몰두한 나머지, 마치 자신과 서래 사이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생략하고 서래의 거실 안에 직접 들어간 듯이 연출된다.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서래를 응시하며 해준은 “마침내 우는구나”라는 독백을 털어놓으며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그늘 아래 서래의 얼굴은 고양감을 내비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마침내”라는 부사에는 ‘나의 기대가 실현되었다’는 예측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이는 먼 거리에서 겹겹의 장막에 싸인 일면만을 엿보고 있을 뿐임에도, 진실에 누구보다 가까이 접근해 있다고 착각하는 해준의 자만이며, 이내 산산이 깨질 허상이다.




청각적 거리: 언어와 디지털화된 음성


해준과 서래는 청각적으로도 유리되어 있다. 우선, 둘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서래는 산해경을 번역해 읽으면서 익힌 고색창연한 어휘를 사용하며 일상적인 상황들에서 때때로 생경한 감성을 자아낸다. 적절한 한국어 표현을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인터넷 번역기의 기계 음성을 통해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사 사이사이에는 잠깐 씩의 공백이 존재한다. 진공의 우주 공간을 건너며 조금씩 소모되어 흩어지고 마는 태양열처럼 해준과 서래는 서로의 말이 소실되고 전해질 수 있도록, 그리고 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도록 절박하게 노력한다.




서래가 거짓말을 하던 부산에서는 번역기의 음성이 남자의 목소리지만, 이포에서의 진솔한 사랑 고백과 유언을 전하는 음성은 여자의 목소리에 근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서래가 사라져 버리기 전까지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해준은 밀물이 모래톱을 완전히 뒤덮고 난 뒤에야, ‘휴대폰을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리라’는 자신의 말이 서래에게는 사랑 고백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 사람의 언어는 근접할 뿐, 맞닿지 못하고 미끄러져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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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영화에서는 디지털 매체를 거쳐 한 차례 처리된 음성이 자주 들린다. 상대를 관찰하며 떠오른 상념이나 감정을 스마트워치에 녹음하기도 하고, 서래는 해준의 목소리를 녹음하여 계속 돌려 듣는다. 또한 영화 전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화라 할 수 있는, 서래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포에 온 이유를 밝히는 대화 역시 전화 통화로 이루어진다. 다른 네 개의 감각을 배제한 채 오로지 청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일 뿐만 아니라 뭉툭하게 무뎌지고 잡음이 섞인 소리를 통해 서로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식상의 장해는 언어, 기호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상의 장해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이, 자신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달아나던 서래를 거의 붙잡을 뻔한 적이 있다.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는 대목이다. 해준이 서래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이번에는 환상이 걷히고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그 섬뜩한 비늘을 언뜻 비추는 장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시퀀스에서 사용된 연출들을 세부적으로 분석해보겠다.



줌아웃/트랙인의 돌리 줌 기법이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 Vertigo (1958)에서 시도되었다는 점에서 지극히 의도적인 연출.

가장 처음은 서래가 월요일마다 방문하는 할머니를 대신 찾아가 돌보던 해준이, 기도수가 죽은 월요일에 서래의 알리바이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씬이다. 이 때 해준의 착잡한 표정은 줌인/트랙아웃 숏으로 포착된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서래와 달콤한 추억을 쌓으며 행복감에 도취되어 구름 위를 날아다니던 해준이 당면한 추락을 직감하고 돌연 고소공포를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또 한편으로는 지상의 편협한 시야로는 보이지 않던 사건의 전말을 높은 곳, 보다 정확히는 기도수가 추락한 기름봉의 꼭대기에 올라서야 확인하게 되면서 현기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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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해준이 서래의 범행을 재현하는 시퀀스가 길게 이어진다. 암벽 등반 노하우를 설파하는 기도수의 유튜브 영상, 기도수의 뒤를 몰래 쫓는 서래, 그리고 그런 서래의 행적을 쫓는 해준의 숏들이 교차편집으로 어지러이 나열된다. 상이한 시간대들이 번갈아 가며 제시될 뿐이었던 시퀀스는 갈수록 하나의 시공간으로 통합된다. 해준과 서래와 기도수의 행동은 점차 싱크로를 이루며, 종내에는 산 아래를 내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수통에서 음료를 마시는 해준의 이미지는 기도수와 완전히 겹쳐진다. 낮과 밤이 겹치는 황혼의 순간처럼, 해준의 시간은 마침내 살인이 일어났던 과거의 시간과 연결된다. 암벽에 쓸려 부르튼 해준의 손은 마찬가지로 꺼칠한 서래의 손과 접촉하고, 기도수의 움키는 손질은 서래의 손등에 생채기를 남긴다.




지면으로 떨어진 기도수의 시체는 부감, 시체를 내려다보는 해준은 앙각으로 교차되는 동시에 화면이 밝았다 어둡기를 반복하며 점멸한다. 이 빛의 효과가 있은 직후에는 서래가 귀가했을 때 깜박이는 현관 불빛의 숏이 뒤따르면서 매치컷으로 이어진다. 기다리던 해준은 서래로부터 어떻게 그녀가 협박 편지를 위조했고, 후배 형사인 수완에게 누명을 씌웠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고뇌에 빠진다.




제목 없음.png 사진을 못 찾아서 이 장면은 해준이지만...

해준이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원망 섞인 고별을 남기고 떠나가자 서래는 텅 빈 거실에 홀로 남는다. 이 때의 미장센이 의미심장하다. 푸른 그림자에 잠긴 어둑한 공간을 비추는 카메라는 화면의 절반이 천장으로 채워질 정도로 위를 비춘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던 서래는 아예 소파에 앉으면서 외화면으로 모습을 감추어 버리기까지 한다. 이는 이후 바닷물 아래, 땅 아래로 꺼져 사라질 서래의 운명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복수는 나의 것 (2002), 박쥐 (2009), 친절한 금자씨 (2005), 올드보이 (2003)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모두 유사한 세계관을 드러내며 한 가지 주제의식에 천착한다. 도덕적이고 결백하던 선인이 부조리한 불운을 겪은 후에 각성하여 복수에 눈이 먼 괴물로 거듭나고, 결국 스스로가 다시 비인간적인 폭력의 주체가 된다는 중심 흐름이 공통적이다. 이 영화의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들을 혼란케 한다.




헤어질 결심은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달리 멜로드라마에 가깝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과 서래, 두 인물 모두에게서 앞서 설명한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의롭고도 인간적인 형사, 그리고 다정한 남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고결한 인물인 해준은 서래와의 공모 및 내연 관계 속에서 타락한다. 서래 역시 타국의 부패 공무원과 조폭, 남성이 휘두르는 폭력 아래 고통받는 약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들을 모두 살해한 포식자이다. 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서래의 청록색 드레스에 대해 답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랑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는 색이고 바다와 산의 색이기도 해요.
바다는 빛에 따라 파랑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고, 산도 보는 거리에 따라 그렇죠.

...

안개가 이 영화의 중요한 기후 현상인데
그 속에서 뭔가 흐릿하고 불분명한 것을 보고 싶었어요.
서래는 이렇게 보면 살인자고 저렇게 보면 피해자니까요.



멀리서 나에게 다가오는 검은 형체가 기르던 개인지, 야생의 늑대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는 해 질 녘,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영화는 뿌연 안개의 장막을 두름으로써 인물들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해준은 사랑하는 대상의 본질을 손에 넣기 위해 안개 속을 헤매며 끈질기게 추구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냉혹한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서래의 실종으로 무기한 유예되어 버린 실연(失戀)을 향하여, 해준은 신발끈을 계속해서 고쳐 매며 비틀비틀 나아간다.



[1]

이포에서 두번째 남편이 살해된 사건 이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서래가 거짓말 탐지기 앞에서 진술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남편을 죽였습니까?’ 하는 질문 직후에는 서래의 눈만을 비추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이 이어지는데, 서래가 ‘아니오’라고 답을 하는 순간 선명하던 이미지는, 서래의 녹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취조실 안 컴퓨터 모니터의 전자 픽셀화된 이미지로 전환된다. 서래의 거짓말이 질량을 갖는 순간 동시에 서래와 해준 사이의 화면도 물질화되는 것이다


[참고자료]

이다운. "박찬욱 영화의 염세주의적 세계관 연구." 문학과영상 20.1 (2019): 37-57.

“김혜리 기자의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스포일러 인터뷰”, 김혜리, <씨네21>, 2022.07.14.






※ 언젠가 과제로 제출했던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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