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축구> <희극지왕>
주성치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는 과장이다. 과장은 무언가를 크게 부풀리거나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장은 때로는 불편함을 주거나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의 과장은 황당함과 동시에 웃음을 유발한다.
<소림축구(2001)>에서 깡통을 걷어차 하늘 위로 보내 버린다거나, 사람이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 정도로 강한 태클을 거는 장면은 예사다. 이러한 과장은 주로 영화 속 주성치의 특징을 부각하거나 주성치가 상대해야 할 적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된다.
친선전으로 만나게 된 동네 깡패 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소림축구단은 호되게 당한다. 축구 실력이 아니라 물리적 폭력에 의해서다. 경기보다 상대 팀 선수를 폭행하는 데 더 집중하는 동네 깡패 축구단과의 경기는 마치 전쟁처럼 느껴진다. 축구장은 어느덧 전쟁터로 변하고, 어느 순간 주성치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다니는 군인이 된다.
<소림축구>에 나타난 과장은 경기가 과격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극대화하여 표현하는 것과 동시에, 영화에 나타나는 폭력성을 적절한 수위로 낮추는 기능을 한다. 축구장을 전쟁터로 은유하여 해당 경기가 폭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만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표현을 영상으로 옮긴 듯한 표현으로 가득한 <소림축구>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연출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페어플레이 정신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을 인식하게 만든다.
<희극지왕(1999)>은 연기에 대한 주성치의 진지한 사랑 고백이지만, 주성치 영화답게 영화 곳곳에 주성치식 개그를 즐길 만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는 주성치가 자신이 연기를 할 수 있다면서 표정 연기를 하는 씬이다. 연출이 주성치를 테스트하기 한 줄짜리 상황을 던질 때마다 주성치는 표정을 바꾸어 가며 연기한다. 이때 주성치의 과장된 표정 연기는 웃음을 유발한다.
몇 초 간격으로 바뀌는 표정을 보면서, 표정 연기가 본질적으로 전달해야 할 감정이 얼마나 잘 드러나는지 궁금하여 AI 표정 분석기 My Facial Analysis로 분석해 봤다.
첫 번째 컷에서 주성치에게 주어진 상황은 ‘부인이 출산 중인 남편의 얼굴’이다. ‘아기는 태어났지만 아내는 죽는다’라는 상황이 추가되었을 때는 주성치의 표정에서 슬픔과 놀람이 교차한다. ‘아이는 천재라서 벌써 아빠라고 부른다’라는 상황을 덧붙이자 AI는 주성치의 표정에서 놀라움과 약간의 행복함을 분석했다. ‘아이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의 얼굴에서는 슬픔과 혼란스러움을 읽어낸다.
사실 표정 연기는 연기의 아주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다. 우리가 표정만으로 인간의 감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기 어렵듯이, 연기도 표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연기란 시선 처리, 움직임, 태도, 말투부터 연기를 하는 사람 자체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희극지왕>이 이 장면에서 표정 연기를 사용한 이유는 코미디와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기에 표정이라는 비언어적 요소가 쉽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장된 표정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이 웃음은 다시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다.
<희극지왕>에서의 과장된 표정은 연기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지닌 주성치의 자세와 연결되면서 장면과 주성치의 행동을 희화화한다. 관객들은 감독의 앞에서 열심히 연기를 펼치는 주성치를 보며 웃는 자신을 발견할 때, 이것이 사실은 부조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타인의 열정을 비웃은 것만 같다는 찜찜함, 누군가의 진지한 자세를 보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부조리함. 마냥 웃긴 장면인 줄 알았는데 다 웃고 나니 묘해지는 기분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주성치 영화 속 과장은 이제 주성치의 아이덴티티에 가까워졌다. <소림축구>에서 축구장이 전쟁터처럼 표현되거나, <쿵푸 허슬>에서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거나, <희극지왕>에서 얼굴 근육을 찡그려가며 하는 표정 연기를 할 때 나타나는 과장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만이 아니다.
과장은 때로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거나 관객들로 하여금 부조리를 인지하게 만든다. 이러한 과장의 역할은 코미디와 드라마를 오가는 주성치의 작품 속에서 더욱 부각된다. 과장은 주성치가 만들어낸 독창성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