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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성은 허상 같은 것

<홍콩 레옹>

by 일영

<홍콩 레옹(1995)>은 유진위 감독의 작품으로, 주성치 영화 중 어둡고 아스트랄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다. 이러한 탓에 <홍콩 레옹>은 주성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그저그런 흥행 성적을 거두었으며, 아직까지도 주성치 영화 중 어쩌면 가장 괴상한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사실 <홍콩 레옹>의 원제는 <회혼야回魂夜>다. 원귀가 돌아온 밤에 퇴마사 주성치가 원귀를 쫓아낸다는 설정을 고려한다면 원제목이 더 알맞겠지만, 주성치가 레옹, 막문위가 마틸다 분장을 하고 나온다는 점 때문인지 홍콩판 <레옹> 같은 제목이 붙어 버렸다. 그러나 주성치에게 <레옹>을 기대한 감상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홍콩 레옹>

<홍콩 레옹>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우리가 믿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를 다루는 자세다. <홍콩 레옹>의 주성치는 본인을 퇴마사라고 소개한다. 그는 분신처럼 소중히 들고 다니는 화분에 핀 꽃, ‘릴리’를 통해 귀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 초반부 시어머니 귀신에 빙의된 꼬마를 발견하고 꼬마에게서 시어머니 혼령을 빼낸 주성치는 어딘가 수상하고 꽤나 실력 있는 퇴마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성치는 사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주성치를 찾기 위해 온 간호사들에 의해 주성치가 정신병원 환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제 관객들은 그의 행동과 말을 의심쩍게 생각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주성치를 미치광이라고 부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윽박지른다. 기묘하면서도 전문가 같던 퇴마사 주성치는 금세 못 미더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 <홍콩 레옹>

그러나 주성치가 말한 것에 거짓은 없었다. 주성치가 야심 차게 소개했지만 사람들에게 금방 무시당했던 비행 헬멧은 위급 상황에서 (완벽히 동일하지는 않아도 다른 형태로) 사람들을 구한다. 주성치는 자신의 도전이 성공했음을 깨닫고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인다.


귀신을 몸 안에 가두고 자신이 사라지기를 택하는 주성치의 진심 어린 투혼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주성치의 진심을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홍콩의 레옹은 모두가 자신을 부정하고 비정상이라고 낙인찍을 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 왔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홍콩 레옹> 속 주성치는 자신의 신념을 가진 진지한 인물이지만, 사회적 시선에 의해 쉽게 폄하당해 왔다. 주성치와 함께 모험을 떠났던 인물들은 모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들을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주성치를 믿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영화 밖에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관객이다. 관객은 이제 주성치와 그가 가진 신념을 믿는다. 관객과 주성치 사이에 생긴 비밀이다.




정상성은 아주 모호한 개념이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바탕으로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규정하는 것, 또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홍콩 레옹>에 드러나는 비정상성은 상대적이면서 가변적이다. 이렇게 주성치의 ‘레옹’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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