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서 구르던 개는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고 하더군. 거둬준 은혜도 과분한데 죽는 모습까지 보이는 건 민폐라고 생각하는 모 양이야.”
폭포는 낯선 목소리에 눈을 떴다. 꼬리 끝까지 뻐근함이 느껴졌다. 짧은 네다리를 쭉 늘려 기지개를 켰다. 아래턱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목을 쭉 늘리니 시야에 뭔가 걸렸다. 여섯 살은 되었으려나? 까까머리에 볼이 통통한 아이였다. 그 옆에는 폭포보다는 키가 좀 큰 흰 푸들이 서있었다. 폭포는 반사적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사람이라면 도 둑이라도 반길 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개다웠다. 정신없이 흔들 리는 꼬리가 부자연스럽게 휜 것도 그 좋아해 마지않는 사람이 한 짓이었는데도 말이다.
“안녕? 처음 보는 친구야. 뭐라고 하는지 못 들었어. 다시 말해 줄래?”
폭포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이와 다르게 아이는 조 금 난감해 보였다.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상황이 답답했는지 푸들이 대신 나섰다.
“그냥 말하면 되는 걸 또 고민을 하고 있네, 네 이름이 뽀뽀냐? 잘 들어라. 너는 죽었다.”
“무슨 개 뼈다귀 같은 소리야? 그리고 내 이름은 뽀뽀가 아니라. 폭포거든?”
“뽀뽀나 폭포나. 아무튼 너는 죽었다. 얌전히 우리를 따라와. 쉽게 가자고.”
말을 마친 푸들이 기다란 앞발로 폭포의 발치를 가리켰다. 그것을 따라 까만 눈이 반 바퀴 굴러 제 발 밑을 보았다. 온기 하나 없이 축 늘어진 채 눈에 파묻힌 시츄가 있었다.
폭포는 눈이 수북하게 쌓인 자신의 머리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놀란 나머지 벼룩처럼 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툭 튀어나온 눈 은 이제 쏟아져 내릴 정도로 커졌다. 오늘도 어제처럼 산책을 하고 있었었다. 폭포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폭포는 몰랐던 모양이구나.”
꼬마가 폭포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어설픈 손길이었지만 이 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폭포는 제 주변을 살폈다. 발이 파묻힐 정도로 뽀얀 눈이 쌓여 있었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눈에 파묻힌 털북숭이 시츄는 바로 자신이라는 게 실감 났다. 요즘 쉽게 피곤하긴 했었다. 계단을 오르다가 뒷다리가 삐끗해서 모서리에 배를 긁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산책을 하자 길 위에서 잠이 들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 폭포는 차갑게 식은 제 몸을 앞발로 긁어보고 머리로 밀었다. 다시 몸으로 들어간 다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긁고 흔들어도, 차갑게 식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폭포는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사도 못했단 말이야. 너무 보고 싶어.”
“준비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점잖은 말투였다. 폭포에게 한 말인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인지 알 수 없었다. 폭포가 대꾸하지 않자 머쓱해진 아이는 손목으로 코를 훔쳤다. 콧구멍이 잔뜩 들리든 개의치 않는 모 양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닦아 대는 모습이 꼭 둘째와 막내 같았다. 아 줌마는 그렇게 코를 닦으니 들창코가 된다고 늘 잔소리를 했었다. 그 생각에 폭포는 다시 울적해졌다.
“그냥, 기절을 시켜서 데려가면 안 될까?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해?”
푸들은 잔뜩 골이 나서 앞발을 바닥에 탁탁 쳤다. 태어났으면 죽는 것은 모두가 겪는 일인데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죽어서 슬픈 것은 동물 쪽이다. 인간이란 족속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널린 게 귀여운 동물들이다. 마음에 드는 동물이 없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내는 게 인간이었다. 그래서 한낱 개의 죽음은 큰 문제가 아니 었다. 언제 그런 개가 있었냐고, 금방 잊어버릴 거였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도 저승 길잡이가 되어 지겨운 꼴이나 보고 있을 일도 없었겠지. 언제 만 번을 채워서 저승으로 갈 수 있을까? 푸들은 울고 있는 시츄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댕댕이 별은 어떻게 가는 거야?”
한바탕 울고 난 폭포는 문 득 궁금해졌다. 꼬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떼쓴다고 되는 일도 아니 었다. 억지를 부려서 남아있는다고 해도 폭포에게나 남겨진 가족에게 나 좋을 일이 없다고 했다. 버티고 남아있으면, 가족들에게 우환이 생 긴다나 어쩐다나? 어려운 말이었지만 나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떼쓰지 않고 따라나서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댕댕이 별이라니, 그런 거는 없다. 사람이든 개든 죽으면 모두 저 승으로 간다.”
푸들이 비웃었다. 아직도 그런 말을 믿는 개가 있냐고 덧붙였다. 그 런 푸들과는 다르게 꼬마는 말없이 걸었다. 이 길은 폭포도 아는 길이 었다. 아이들이 다닌 초등학교 뒷산이다. 길바닥 신세였을 적 굶주린 배를 채우려 이 부근을 어슬렁댔었다. 한 번은 심술궂은 녀석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그때 미처 피하지 못한 머리통 만한 돌이 폭포의 꼬리를 아작 냈다. 그런 폭포를 아이들이 구해줬었다. 그 뒤로 폭포는 뒷산은 영 찜찜해서 올라가지 않았다. 언제라도 그 놈들이 튀어나와 돌을 던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폭포의 마음을 대변하듯 휘어진 꼬리가 안테나처럼 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꼬마가 걸음을 멈췄다. 허리를 숙여 바짓단을 접 어 올린다. 개울을 건너려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폭포에게 물었다.
“혹시 물 무서워하니?”
산전수전 다 겪은 개에게 물이 무섭냐고? 폭포는 턱을 치켜들고 세게 도리질했다. 진지한 모습이었지만 개는 개다. 그런 폭포가 귀여웠는지 아이가 작게 웃었다.
“씩씩하구나. 나는 아직도 조금 무서워서 말이지.”
아이가 코를 쓱 하고 닦았다. 멋쩍을 때면 나오는 버릇 같았다. 아이는 산책로에서 벗어나 개울가로 내려갔다. 여름에 비해 폭이 아주 좁아져 있었다. 마치 숨죽인 듯 고요히 흐르는 개울물은 빠진다고 하더 라도 신발 좀 젖고 말 정도로 얕았다. 폭포는 먼저 걷는 아이와 푸들을 부지런히 따라갔다. 흰 눈에 감춰진 차갑게 언 땅과 바싹 말라버린 낙 엽이 바스락댔다. 폭포는 그 소리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단지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가 바짓단까지 접어가며 개울을 건넌 것이 무색하게 건너편은 길 하나 없는 산이었다. 네발 달린 짐승도 올라가기 힘들어 보이는 경 사였다.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추위를 이겨보겠다는 듯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 볼품없는 나뭇가지 위에 흰 눈이 도톰하게 내 려 앉아 있었다. 그중 유독 허리가 두꺼운 밤나무가 있었다. 그 밤나 무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뿌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산비탈에 위태롭게 자리 잡은 밤나무와 얼 마나 깊은 지 모를 수상한 개구멍이었다. 여름에 폭풍이라도 오면 뽑힐 것 같았다. 퍼석하게 말라붙은 뿌리가 삐져나온 개구멍은 몹시 위태해 보였다. 개구멍으로 아이가 기어 들어갔다. 그 뒤를 푸들이 따랐다. 녀석의 다리는 제법 길어서 별 어려움 없이 구멍 안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폭포도 뒷다리에 힘을 주고 그들을 따라갔다.
개구멍 너머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눈이 채 녹지도 않은 폭포의 발바닥에 포슬포슬한 흙이 묻었다. 벌름대는 콧속으로 달콤한 과일향과 싱긋한 풋내가 들어왔다.
“여기는 정말 딴 세상 같아.”
폭포가 신이 나 말했다.
“당연하지. 여기는 다른 세상이니까.”
푸들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폭포는 그새 흰 나비에 정신이 팔려 풀숲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태평한 폭포와는 다르게 아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승으로 통하는 문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대기 행렬에는 개와 고양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간혹 앵무새나 도마뱀 같은 동물들도 있었 다. 낡은 한옥 대문은 한쪽만 열려 있었는데, 그래서 입장이 느린 듯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물들 사이로 아이의 또래로 보이는 인간들이 드문드문 서있었다. 아마 저승으로 들어가는 방도를 일러주는 것 같았다.
“이번 겨울이 유독 추웠지. 대기줄이 좀 기네.”
아이가 혼잣말을 했다.
“쳇, 날씨 탓은…….”
그 말을 들은 푸들이 앞발로 돌멩이를 툭 쳤다. 그 돌이 그대로 폭포의 엉덩이로 날아갔다.
“아얏!"
폭포가 뒤를 휙 돌아봤다. 나비는 놓쳐버리고 말았다. 뭐라고 한 마 디 할까 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님을 깨달은 듯 아이 옆으로 돌아왔다.
“우리도 줄 서야 하지? 되게 긴데?”
폭포가 둘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렇지, 우리도 줄을 서 볼까?”
폭포는 아이를 따라 줄의 맨 끝으로 갔다. 푸들은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순서를 기다리는 듯 아닌 듯한 애매한 곳에 자리를 잡 고 앉았다. 한 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걸 이미 아는 눈치였다. 폭포도 금세 지루해져 고개를 쭉 내밀고 줄 앞을 살피려 했다. 그때 갑자기 앞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조이, 조이야! 왜 나 만두고 갔어.”
울부짖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궁금해진 폭포는 앞에 서있던 셰퍼드의 등을 타고 올랐다. 꼭 아줌마 또래의 여자였다. 모여 있는 동 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간의 체 면도 없는지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그런 아줌마를 아이들이 끌어내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택도 없었다. 체구 차이도 있었지만 아줌마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폭포까지 덩달아 슬퍼졌다. 잊고 있던 가족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폭포는 뱃속부터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저 아줌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폭포가 울먹이며 물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건 괴롭지. 나도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
아이가 말했다.
“우리 가족들은? 아줌마가 그랬어. 내가 죽으면 자기는 무슨 낙으로 사냐고!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따라서 죽고 싶다는 말이지?”
폭포가 잔뜩 흥분해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이는 평온했다. 폭포의 반응에 난감한지 검지로 눈썹을 긁어 댔다. 폭포는 뱃속이 쿵쾅 대는 것을 느꼈다. 죽은 개는 죽은 개다. 가족들이 엉뚱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포야, 가족들은 괜찮을 거야. 네 생각보다 강한 사람들이거든.”
아이가 달래듯 말했다.
“너도 길에서 구르던 개가 아니냐? 그런데 가족들이 그렇게나 네 생각을 한다고?”
폭포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내내 조용하던 푸들이 물었다. 폭포가 출신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카랑카랑한 폭포의 소리가 세상만사 무관심한 푸들의 얼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푸들은 말라붙은 코를 혀로 날름 핥았다. 군침 도는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표 정이었다. 그때. “여기 좀 도와줘!” 저쪽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동물들의 저승에 난입한 아줌마가 쉽게 제압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금방 다녀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어린아이가 완력이라도 써야 하는지 소매까지 걷어 올렸다. 내내 등에 매던 봇짐까지 내려놓고 갔다. 푸들의 시선이 아이가 놓고 간 짐 에 잠시 머물렀다.
“진짜, 사는 낙이 없을 수도 있어.”
“우리 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건 싫어. 나는 죽어도 가 족들은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건 네 생각이고. 너, 내가 저런 사람들 한 두 번 보는 줄 아니?”
“차라리 날 잊더라도. 나쁜 생각은 하면 안 된단 말이야.”
폭포가 울부짖었다.
“널 잊어도 괜찮다면, 방법이 있지.”
어느새 폭포 옆에 바싹 붙은 푸들이 나직하게 말했다.
“어떤 방법인데?”
폭포가 털에 엉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너에 대한 기억을 주워 담는 거야. 널 기억할 수 없도록. 그렇다면 너 때문에 괴로울 수도 없겠지.”
“기억을 어떻게 주워 담아? 그런데, 정말 가족들은 행복해질 수 있어?”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 거 아니야?”
푸들은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몸을 낮추어 사방을 살폈다. 아이들은 불청객을 쫓아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다른 동물들도 그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짧게 휘파람을 분 푸들이 그대로 봇짐에서 무언가를 낚아챘다. 빨간 주머니였다. 알 수 없는 글자가 잔뜩 쓰여 있었다. 속이 비었는지 축 쳐진 주머니에는 기다란 끈이 달려 있었다. 푸들이 긴 주둥이에 끈을 올리고 고개를 뒤로 훽 젖히자 주머니가 목걸이 마냥 목에 대롱대롱 달렸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잽싸게 따라와.”
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개구멍 쪽으로 달렸다. 폭포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푸들을 따라 달렸다. 누군가 폭 포를 찾는 소리가 들렸지만, 한번 내달리기 시작한 다리는 멈출 줄 몰랐다.
푸들은 신이 나서 달렸다. 이렇게 신나게 달려본 지가 얼마만인지 도 몰랐다. 이번에는 저승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도 모 르고 잔뜩 사랑을 받았나 본데, 잘은 몰라도 저 기억이면 충분할 성싶었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며, 폭포가 잘 따라오는지 살폈다. 내딛는 걸 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푸들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도 꼭 이런 추운 겨울에 죽었다. 처 음 본 산속에 혼자였다. 죽은 것도 모른 채 바닥에 코를 박고 먹을 걸 찾아다녔다. 저승까지 데려다 줄 검은 개를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검 은 개는 푸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너처럼 죽는 동물들 이 많이 생긴다고.
특히 떠돌이 개는 인간들에게 거둬져도 죽을 때가 되면 짐이 되기 싫어 가족을 떠난다고 했다. 꼭 너처럼. 푸들은 자기 같은 떠돌이 개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검은 개를 따라 간 저승길은 기괴했다. 인간의 키만큼 자란 옥수수 가 길 양 옆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녁노을에 옥수수의 그림 자가 길게 늘어졌고, 이따금 바람이 불 때면 잎들이 바스락 대는 소리 가 꼭 사람들이 웅성대는 것 같았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걷는 푸들에게 검은 개는 취향 한번 독특하다고 했다. 물론 푸들은 나중에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 개가 말하길 저승은 배고픔도, 추위도, 슬픔도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 가면 행복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행복을 이 해할 수 없었던 푸들이 그게 뭐냐 물어보자 검은 개는 얼버무리더니 네가 지금까지 살던 것과는 정반대일 거라고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저승에 가면, 더는 쫓길 일도, 배를 곯을 일도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입구에는 문지기가 있었다. 검은 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면 된다고 했다. 푸 들의 차례가 오자 문지기는 물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느냐?”
“글쎄요. 길 위에서 먹고 자고, 굶는 날도 많았어요. 여름에는 더운 대로 살고, 겨울에는 추운 대로 살고. 그러다가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사람들한테서 도망친 게 마지막 기억인데요. 죽어라 달렸었거든 요. 근데 깨어보니 진짜 죽었더라고요.”
문지기는 그 뒤로도 이것저것 물어봤다. 어떻게 오게 되었냐, 몇 해를 살았냐는 둥 질문이 많았다. 푸들은 이제 그만 물어보고 들여보내 줬으면 했다. 하지만 문지기의 생각은 달랐다. 누렇게 낡은 종이를 몇 번이고 살펴보더니 말했다.
“네 기억이 7년이나 비는구나. 값이 맞지 않아 저승에는 못 간다.”
당황한 푸들은 도움을 구하고자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검은 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푸들의 기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대문 앞에서 폭포는 머뭇거렸다. 보고 싶었지만 막상 마주하려니 주저되었다. 망설이는 엉덩이를 푸들이 걷어찼다. 떠밀려 들어왔더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어디 갔을까? 폭포는 귀를 세우고 코를 벌렁댔다. 인기척은 없었다.
집 안은 차가웠다. 죽은 개의 숨결에도 입김이 나올 것만 같았다. 폭 포는 소름이 돋아 몸을 털었다. 폭포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밥그릇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오면, 바로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현관문 앞에 뒀었다. 물방울이 맺힌 물그릇 위로 희뿌연 안개가 피어올랐다. 오래된 영화가 상영되듯 기억이 재생됐다. 폭포가 이 집에 온 첫날이었다. ‘폭포야, 이제 네 밥그릇도 있어. 가족이니까.’ 막내가 자신의 밥그릇을 폭포에게 주었다. 태어나 양보는 처음이어서 머쓱했던지 손바닥으로 코를 쓱 닦아 올렸다.
썩어 널브러진 음식물이 아니라, 먹음직스러운 밥이 있었다. 기분 좋은 냄새에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모두 자신을 보고 있었다. 밥 먹는 게 뭐가 그렇게 기특한지 흐뭇해했다. 가족들의 밥도 폭포와 똑같은 그릇에 담겨있었다.
갑자기 연기가 사라졌다. 그리곤 다시 환영이 보였다. 이제는 어른 이 된 막내가 나왔다. 물그릇을 비웠다. 채웠다. 밥그릇을 비웠다. 채 웠다. 비우고, 채웠다. 그러다 주저앉아 울었다. 손등으로 대충 눈을 닦아내곤 다시 그릇을 채웠다, 비웠다.
“막내야, 그만해. 그만해줘, 제발.”
더는 지켜볼 수 없던 폭포가 막내에게 뛰어들었다. 그 순간 막내가 모래바람처럼 뿌옇게 흩어지고 말았다. 그때 폭포의 발치에 ‘툭’ 빨간 주머니가 떨어졌다.
“여기다가 넣어.”
푸들이 말했다. 폭포는 어떻게 기억을 넣는지 들은 바가 없었다. 하 지만, 이 추억을 주머니에 담겠다고 마음먹자 주머니가 아주 부풀었다. 푸들이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제대로 담겼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빨리 움직이자고, 다음 기억은 뭔데?”
그 말투가 어찌나 차가운지 입김도 나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폭포가 간 곳은 안방이었다. 폭포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가족들이 제일 공들여 청소하는 곳이 바로 침대 밑이었다.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폭포가 들어가 쉬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침대 아래에는 폭포가 물어온 양말과 가족들이 넣어준 인 형들이 있었다. 폭포는 아줌마의, 아저씨의, 첫째의, 둘째의 그리고 막내의 냄새가 나는 양말을 모두 주머니에 담았다. 어둠 속에서도 환영 이 재생되었지만 폭포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다음은 베란다였다. 나무 모양의 장판이 깔려 있었는데, 폭포가 걸을 때면 요란하고도 리드미컬한 소리가 나곤 했었다. 가족이 된 첫날 화장실을 찾지 못한 폭포가 실례를 했던 곳이기도 했다. 오래 참았던 탓인지 아니면 장판 때문이었는지 그 소리가 요란했었다. 아저씨는 천막 위로 떨어지는 장대비 같았다고 했고, 아줌마는 꼭 폭포 소리 같았다고 했었다. 나오는 오줌을 참을 수 없어 머쓱해하던 폭포에게 가족들은 말했다. ‘이름은 정해졌네, 폭포야.’
폭포는 그 추억도 주머니에 담았다.
지금은 누가 오더라도 이 집이 시끌벅적했었다고 믿지 않을 거다. 폭포는 그렇게 생각했다. 집구석 구석을 돌면서 기억을 담았다. 작았던 주머니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가득 찼다. 폭포는 이 정도면 될 거라 생각했다.
“무슨 놈의 기억이 이렇게 많아.”
푸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이만 돌아가자. 그런데, 가기 전에 가족들은 볼 수 없을까?”
폭포가 작은 기대를 갖고 물었다.
“그건 안돼.”
설렘에 살랑대던 꼬리가 이내 축 쳐지고 말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자신을 떠올리며 괴로워할 추억은 사라질 테니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폭포는 그럼 됐다고 생각했다.
짧았지만 누구보다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니까. 그래도 떠나기 전에 가족들의 고통을 없앨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현관을 나서려는데 문 앞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만 보니 가족 들과 나들이 나갈 때 메던 목줄이 있었다. 폭포는 쿨톤이라서 파란색 이 어울린다며 둘째가 고른 것이었다.
연기가 진해지고 목줄을 쥔 채 몸부림치는 둘째가 보였다. 여태 봤던 장면들과 달랐다. 폭포는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폭포가 나가기 전에 뒤돌아서 나를 봤었다고. 같이 산책하러 가자 고…… 그때 내가 갔었으면, 내가 갔었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왜 바보같이 그 마음을 몰랐을까? 다 내 탓이야. 폭포가 두 번이나 날 돌아봤다고, 내가 혼자 다녀오라니까 쓸쓸하게 고개를 돌렸는데, 내 잘 못이야.”
사실이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 그날 폭포는 집에 혼자 있을 둘째에 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둘째를 혼자 두고 잠깐 산책을 다녀올 심산이었다. 그저 집에 홀로 두고 다녀와도 괜찮을지 살폈을 뿐이었다. 그 걸 둘째는 오해하고 있었다.
“잠깐만, 이것까지만 담고 가자.”
“그러시던지.”
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 보였다. 폭포는 또 망설이고 있었다. 울고 있는 둘째의 뒤로 그리운 가족들 의 환영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의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그래도 폭포는 좋았다. 반가움에 자기도 모르게 꼬리를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안기고 싶었다. 그렇지만 저 야 속한 환영은 달려드는 순간 흩어질 것이다. 폭포는 발바닥에 힘을 꾹 주고 참았다. 다시 보지 못한다면 지금이라도 원 없이 볼래. 폭포의 그 런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푸들이 재촉했다.
“그만, 얼른 담아. 시간이 없어.”
“조금만 더 기다려줘.”
“빨리 가야 해. 이미 너무 늦었어.”
“잠시만, 제발.”
어느새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비록 흐릿했지만, 실제가 아니 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가족들은 서로를 안아주고 있었다.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폭포는 먼저 떠났지만, 폭포가 우리에게 준 추억이 있잖아. 지금 괴로운 만큼 우리는 폭포를 사랑했던 거야.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잖니, 폭포도 우리를 사랑해 줬어. 그러니 괜찮아질 수 있어. 변치 않을 추억을 주었잖니’
그만큼 사랑했기에 이토록 괴로운 것이라 했다. 사랑해서 아픈 거 라니, 폭포는 혼란스러웠다. 그러면 아픔을 가져가는 건 사랑까지 앗 아가는 건가요?
“지금 안 떠나면, 다 수포로 돌아간다고. 이 바보야! 네 가족들이 평 생 너 생각하면서 우는 꼴 볼 거야?”
푸들이 짜증스럽게 말하는 바람에 폭포는 정신을 차렸다. 망설이느라 폭포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한 번 더 재촉했다.
“아까 그 아줌마 기억 안 나냐고! 저승에서 만나고 싶어?”
그 소리에 폭포가 얼른 마지막 기억을 주머니에 담았다. 그와 동시에 푸들이 달려들었다. 폭포보다 긴 앞다리로 가볍게 폭포를 걷어차곤 그대로 주머니를 낚아챘다. 얼마나 힘이 좋았던지 폭포는 한 번 더 죽 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이미 한 참을 앞서가는 푸 들을 따라 달렸다. 성치 않은 뒷다리가 삐끗했지만 ‘깡’하는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뛰었다.
“미친 개야, 내 주머니를 돌려줘.”
폭포가 펄럭이는 혀를 입안에 간신히 집어넣고 말했다. 그러든 말든 푸들은 앞만 보고 내달렸다. 이제 곧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죽었어도 뛰어 줄 나름의 심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폭포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이 심장마저 터지면 저승의 저승으로 가는 걸까? 내가 갖든 푸들이 가져가든 괴로운 기억만 없으면 가족들은 편해지는 게 아닌 가? 폭포는 갈등했다. 하지만 이름도 모를 개에게 뺏길 추억이 아니었다. 밤새 베갯잇을 축축하게 만들고, 죽은 개의 물그릇을 새로 채워 주는 일. 사진첩을 보다가 액자를 거실에 놓았다가 다시 침대 밑으로 넣기를 반복하는 일. 청소기가 놓친 흰색과 갈색의 털을 두 손에 소중히 쥐는 일. 마지막 산책을 떠나기 전 자신을 돌아보던 개를 회상하며 자 책하는 일. 물건 값을 치르기 전 마트 계산대에 진열된 소시지를 두어 개 담는 일. 늦은 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쓸쓸한 현 관을 마주하는 일. 장판 바닥을 요란하게 두들기며 달려올 네발 달린 말썽꾸러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 저 푸들은 그 마음을 알까?
그 순간 푸들의 등에서 달랑대던 주머니가 조금 벌어졌다. 작은 기억 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마음껏 동네 산책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대 문을 앞발로 살살 긁었었다. 귀가 밝은 둘째가 문을 열어줘야 했다. 하 지만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작게 ‘왕’하고 짖었지만 불 이 꺼진 집은 조용했다. 꽁꽁 언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가족들이 왜 오지 않지? 나를 잊은 건가? 얼음장 같은 바닥과 맞닿은 폭포의 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때, ‘폭포야!’ 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봐봐. 폭포는 이사를 간다는 걸 모른다니까.”
이미 한바탕 울었는지 눈가가 빨간 둘째가 폭포를 안아 올렸다. 폭 포는 방금까지 자신을 갉아먹던 생각도 잊고 꼬리를 흔들어 댔다. 밖을 얼마나 돌아다녔던 건지 둘째의 몸도 폭포만큼이나 차가웠다. 그 품속에서 폭포는 따뜻함을 느꼈다.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었다. 그날 후로 한 동안 폭포에겐 목줄 없는 산책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그 래도 행복했다. 나를 버리지 않는 가족, 내가 사라지면 나를 찾아줄 가 족이 있다는 것은 캔 사료 백 개와도 맞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 소중한 추억을 함부로 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의 추억이 대롱대다 막 떨어지려는 찰나 폭포는 믿을 수 없는 속도를 냈다. 푸들과의 격차를 단숨에 좁히고 등에 올라탔다. 폭포와 푸들은 그대로 흙 위를 뒹굴었다. 빨간 주머니가 푸들의 몸에서 튕겨 나왔다. 폭포는 그대로 뛰어올라 주머니를 입에 물었다.
“어차피 버릴 기억인데 뺏기기는 아쉬운 거야? 심보 고약한 개네.”
푸들도 전속력으로 달리는 건 힘들었는지 내쉬는 숨이 거칠었다.
“이 기억은 다시 돌려줄 거야. 괴로워도, 힘들어도 소중한 추억이야.”
폭포는 주머니를 입에 물곤 집으로 힘차게 달렸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만든 추억이다. 한쪽이 멋대로 없애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에 는 자기가 먼저 가서, 문을 두드리는 가족들을 맞이해줄 거라고……. 폭포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친 푸들은 벌러덩 누웠다.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다시 제자리다. 몇 번이나 남았는지 세어보려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폭포의 마지막 기억을 보고 난 뒤부터 마음속이 어지러웠다. 이상하게 꼭 자신의 기억 같았다. 차갑게 굳어가는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던 포근했던 품. 코를 킁킁대면 그 냄새가 날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 다. 그런 푸들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길바닥에서 구르던 개는 죽을 때가 되면 집을 나간다고 하더군. 거 둬준 은혜도 과분한데 죽는 모습까지 보이는 건 민폐라고 생각하는 모 양이야.”
언제 왔는지 모를 아이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눈 치였다. 또 저놈의 소리. 푸들은 저 말이 싫었다. 기억을 뺏어 간 검은 개가 한 말이었다. 몹쓸 개. 기분이 상한 푸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참,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안 그래?”
“내가 알 게 뭐야.”
아이가 나지도 않은 턱수염을 긁는 시늉을 했다.
“남은 쪽이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소린지, 떠날 쪽이 도망치고 싶어서 하는 소린지 모르겠단 말이야.”
푸들은 가슴이 답답했다. 입을 열면 울음이 입 밖으로 밀려 나올 것 같았다. 토해내면 좋으련만, 목구멍에 딱 걸려있었다. 기억을 잃은 이 후로 줄곧 그랬다. 나올 게 아니라면, 내려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괜히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인제 그만 일어나, 이제 네 추억을 찾으러 가보자.”
“저승길 안내는? 만 마리를 보내야, 나도 저승으로 갈 수 있다며.”
“그건 네가 기억을 못 찾았을 때의 이야기고.”
“지금도 없거든?”
“글쎄, 나는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곤 아이가 먼저 길을 나섰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 어도 아이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미적미적 아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둘은 옥수수밭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겨울 도 아니었다. 한여름,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대낮이었다. 양옆에서 까끌까끌한 잎이 부대끼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등골 서늘한 기괴함은 없었다. 바람이 휘 불었다. 따뜻한 공기가 푸들을 부드럽게 쓸었다 사라졌다. 포근한 느낌이 지나자 푸들의 코끝에 갓 찐 옥수수의 단내가 스쳤다. 표정이 없던 얼굴에 미소가 내려앉았다. 푸들은 다시 내달리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