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termelon Jul 15. 2024

오지랖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퇴사하지 말라 잡았던 후배

재입사하기 전.

얼굴도 모르는 팀 후배와 40분을 통화했다.

입사 면담 때 팀장님께서 팀에 사원이 퇴사를 고려하고 있는데 이제 2년 차라 너무 아깝다고 잡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에게 돌고 돌아 내 번호를 굳이 흘렸다.

고맙게도 전화가 왔었다.


별 이야기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히 남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물어봤고 왜 퇴사하고 싶은지 물어봤다. 남는 다면 내가 다르게 해 줄 수 있다고 딱 연말까지만 해보고 그때도 아니면 그때 퇴사하라고 그러면 2년도 채운게 되니 경력 인정받기도 더 좋을 것이라고.

퇴사하기로 결정한다면 놀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무조건 해외로 뜨고 그게 안되면 에어비앤비라도 잡고 집이 아닌 곳에 있으라고.


초여름.

재입사해 출근했더니 그 사원이 자리에 있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가을에 장기휴가를 가고 싶다고 일정을 상의하더라.

내심 좋았다. 당장 퇴사하지는 않을 건가 보네.


결국 다음 해 여름이 오기 전에 그 사원은 다시 퇴사를 결심했다.

지난번 퇴사하겠노라 했을 때의 문제들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자기는 이 일이 AE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린 그녀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회사에, 팀장님께, 그녀가 퇴사 선언을 하기 한 달 전부터 난 알고 있었다.

유난히 묵뚝뚝하고 말이 없던 그녀가 나에게 먼저 상의해준 덕이었다.

팀장님도 미리 안 눈치였다.


그녀의 공식적인 선언에 팀장님은 사내에 다른 포지션을 찾아주려고 위층과 다른 팀 팀장님과 상의했다. 그녀가 팀이동을 하게 되면 우리 팀에 대체인력이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퇴사 선언을 하고 그녀가 뜬금없는 휴가를 냈다. 내가 팀장님에게 그녀가 집들이 간다고 휴가를 냈다고 전하자 "넌 그걸 믿냐?" 하며 한 바탕 웃었고, 휴가 전날 짓궂게 응원을 전했다.


그래서 면접을 보고 돌아온 그녀가

제시받은 연봉이 적당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자

이 정도로 널 보낼 수 없다며, 내가 메일 써줄 테니 당장 재협상하라고 팀장님이 대신 화를 내줬다.

난 그에 우리 회사 평균 연봉 인상률을 계산한 엑셀을 보여주며 너 여기 남으면 더 받아. 이걸 근거로 무조건 더 받아야 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퇴사 선언을 하고도 한 달 반을 채워 업무를 다 마무리하고 그녀는 이직했다.

내가 이직한 그녀에게도 여전히 선배일 수 있길 때론 언니일 수 있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촬영장에서 AE가 할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